주유엔 北대사 회견 ‘선박 억류’에 집중…항의하되 수위 조절

  • 뉴시스
  • 입력 2019년 5월 22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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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 대응에 집중하며 대화 모멘텀 유지
6·12정상회담 정신 언급, 주도권 기싸움
비핵화 협상 언급 시 선박 문제 뒷전 고려

북한이 국제무대에서 화물선 와이즈어니스트(Wise Honest)호를 억류한 미국을 공개 비난해 그 배경이 주목된다. 북한은 기자회견에서 비핵화 협상에 대한 언급은 자제했다. 교착 국면에서 협상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 명분은 쌓되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틀을 훼손할만한 원인은 제공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지난 21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북한이 국제무대에서 특정 사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공개적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김 대사는 이날 모두발언에서 미국 행정부가 국내법에 의거해 북한의 화물선을 억류한 것은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이번 사건이 “적대적 대북정책의 산물”이라고 규정하며 억류하고 있는 화물선을 즉각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 14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미국이 자신들의 화물선을 불법적으로 강탈했다고 주장하며 즉각적인 송환을 요구했다. 이어 17일에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앞으로 보낸 김 대사 명의의 서한에서 “미국이 유엔헌장을 짓밟는 주권침해행위를 감행했다”고 주장하며 유엔 사무총장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 대사의 기자회견 모두발언은 앞선 담화와 서한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졌다. 더 이상의 강한 불만 표출은 없었다. 오히려 화물선 억류 사건이 비핵화 협상과 연계돼는 것을 경계한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차분한 분위기로 기자회견을 이어갔다.

김 대사의 이러한 태도는 질의응답 때 더욱 두드려졌다. 그는 질문에 답을 하지 않는 대신 참석한 각국 기자들을 지목하며 질문을 취합했다. 질문은 선박 억류 사건보다 비핵화 협상과 한반도 정세에 초점이 맞춰졌다. 북한에 억류됐다 혼수상태로 풀려나 사망한 미국인 오토 웜비어 사건에 대해 입장을 표명할 건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김 대사는 질문이 취합된 뒤에도 선박 억류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한 기자회견이라는 점을 상기하며 즉답을 피했다. 대신 그는 미국의 북한 화물선 억류가 6·12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을 완전하게 부정하는 행위라고 재차 비판했다. 그러면서 향후 모든 것은 미국에 달렸으며, 북한은 미국의 반응을 예의주시하겠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북한은 성명이나 담화 등을 관영매체로 내보내는 방식으로 공식 입장을 밝혀왔다. 원색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자 하노이 현지에서 외신을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회담 내막을 공개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3월에는 평양에서 외신과 외교단을 상대로 브리핑을 열어 회담 결렬의 원인이 미국에 있었다고 적극 해명했다. 그리고 이번 유엔 본부 기자회견에서도 선박 억류에 대한 입장을 강력하게 표명하되 원색적인 비난은 자제했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현안에 대한 목소리는 강하게 내되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그 파장이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연말까지 시한을 정해놓고 미국의 용단을 촉구한 만큼 나름의 상황관리 차원에서 메시지 수위를 조절했다는 분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6·12 정신을 언급한 것은 새로운 관계를 위해 노력한다고 해놓고 추가 제재를 하는 것은 합의 위반이라는 주장을 전제로 추가 제재를 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대미 압박 메시지와 동시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대화를 재개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겼다”고 분석했다.

양 교수는 그러면서 “북한 상부에서 선박 문제 외에는 발언하지 말라고 지시했을 것”이라며 “왜냐하면 남북관계나 북미 비핵화 협상 관련 문제가 기자회견에서 다루어질 경우 파장이 커질 수밖에 없고, 한편으로는 선박 억류 문제가 흐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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