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게이트’ 증인 키신저, 폼페이오에 훈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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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비공개 회동 사실 알려져… ‘실세 국무장관’ 닮은꼴 주목
키신저, 탄핵조사 교묘히 피해… 우크라이나 스캔들 놓고 조언 가능성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트위터에 올린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의 회동 사진. 그는 논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채 “선배 국무장관을 만나 영광”이라고만 밝혔다. 사진 출처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 트위터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트위터에 올린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의 회동 사진. 그는 논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채 “선배 국무장관을 만나 영광”이라고만 밝혔다. 사진 출처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 트위터
“다음 주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위기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 내 스케줄이 이미 꽉 찼기 때문이다.”

‘미국 외교의 거두’로 불리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96)이 전성기 시절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했던 말이다. 5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이 말은 유효한 것 같다. 세계 외교 지형은 바뀌었지만 정치인과 정부 관계자들은 여전히 키신저의 조언에 귀를 기울인다.

키신저 전 장관은 지난달 27, 28일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잇달아 접견했다. 중국과 미국의 외교를 총괄하는 두 거물이 앞다퉈 그를 방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지난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등 지도부의 극진한 대접을 받은 키신저 전 장관은 27일 왕이 부장을 만나 미중 무역전쟁에 대해 논의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미중은 서로 단절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는 관계”라며 “미중관계 회복을 위해 개인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미 언론은 “현실주의에 근거한 친중파다운 우호적 발언”이라고 분석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1971년 베이징을 두 차례 극비 방문해 미중 외교관계 수립과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던, 미중 외교사에서 중요한 인사다.

폼페이오 장관은 키신저 전 장관과의 회동 사실을 하루가 지난 29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알렸다.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가 이뤄졌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최근 미국 정치를 달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가 핵심 주제가 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사임을 몰고 왔던 ‘워터게이트 스캔들’의 산증인으로 불린다. 당시 국무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겸임하며 닉슨 전 대통령의 전적인 신뢰를 받던 그는 스캔들 연루가 의심됐으나 교묘히 의회의 탄핵 조사를 빠져나갔다. 의회전문지 더힐은 “국가안보보좌관 겸임설이 나돈 폼페이오 장관 역시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는 등 당시 키신저 전 장관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2020년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는 버니 샌더스 민주당 후보는 폼페이오 장관이 키신저 전 장관을 만난 것을 맹렬히 비난했다. 키신저는 미국의 베트남전 확전, 캄보디아 내전 개입, 칠레 정권 전복 등을 총지휘한 ‘민주주의 파괴자’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키신저의 조언을 듣지 않겠다고 약속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키신저#미국#중국#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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