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테러 비난한 트럼프 “비밀리 추진한 평화협상 취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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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최장 기간(18년)의 전쟁인 ‘아프가니스탄전쟁’을 끝내기 위한 미국과 탈레반 반군의 평화협상이 깨질 위기에 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5일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미군 1명을 포함해 12명이 숨졌다는 점을 들어 협상 중단을 전격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트위터에 “오늘 탈레반 지도자 및 아프간 대통령을 각각 비밀리에 만나려 했다. 하지만 그들(탈레반)은 잘못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우리의 훌륭한 군인 1명과 11명의 사람을 죽게 한 공격을 일으켰고 이를 인정했다”며 “나는 즉시 이번 회동을 취소하고 평화협상도 중단했다”고 밝혔다. 당초 이날 워싱턴 인근의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날 예정이었지만 이를 취소한다는 뜻이다. 그는 “대체 어떤 이들이 협상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느냐. 상황만 악화시켰다”고 비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을 전면 중단한 배후 사정을 놓고 추측이 분분하다고 전했다. 최근 탈레반의 폭탄테러가 계속 이어져 왔고 그들이 미국인을 공격하지 않기로 미국과 협정을 맺은 적도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협상 중단을 위한 일종의 핑계가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로이터에 따르면 탈레반 측은 이날 성명을 내고 “회동 취소로 미국인들이 더 많은 고통을 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용을 이유로 줄곧 해외 주둔 미군 축소를 주장해 왔다. 내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외교 성과도 절실하다. 아프간 미군 철수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린지 그레이엄 상원 법사위원장 등 대통령의 최측근들조차 “철군은 시기상조이며 평화협상 서명도 반대”라고 지적해왔다. 라이언 크로커, 제임스 커닝햄 등 전직 주아프간 대사들도 최근 “미군이 철수하면 아프간이 내전으로 아예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이 대화를 중단함에 따라 아프간 정국은 다시 대혼란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이달 28일 예정인 대선이 순조롭게 치러질지도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거듭된 예측불가 행보로 미국의 위상과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한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과 탈레반 지도자의 회동이 예정대로 이뤄졌다면 6월 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판문점 회동에 버금가는 사건이었을 수 있다고 평했다. 탈레반은 2001년 9·11테러를 자행한 이슬람 극단 무장단체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을 오랫동안 보호했다. 9·11테러 발발 18주년을 사흘 앞둔 시점에 미국의 최대 원수를 보호해 준 무장단체를 캠프 데이비드로 부르려 했다는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의미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트럼프#탈레반 테러#아프가니스탄전쟁#평화협상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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