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서 美 발뺀 사이… 러-中, 군사-경제력 앞세워 영향력 확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러, 시리아 내전 전폭 군사지원
시리아 발판 삼아 중동국가들 견제, 터키-이집트에 전투기 등 수출
中, 이집트 新행정수도 자본 투입
쿠웨이트 북부 신도시 건설 주도, 이스라엘 항만 개발-운영도 맡아


23일 한국 영공을 침범하며 전례 없는 공동 군사 도발을 자행한 중국과 러시아가 최근 중동에서도 부쩍 밀착하고 있다. 비용을 이유로 미군의 해외 주둔을 극도로 꺼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2017년 1월 출범한 후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진다. 특히 러시아는 군사력, 중국은 경제력을 앞세워 중동 내 미국 견제에 주력하고 있다.

○ 친미 이스라엘·이집트서도 중-러 입김


알자지라와 미 싱크탱크 워싱턴 아랍센터 등에 따르면 아랍의 대표적 친미 국가 이집트에서는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대표적 예가 미그 및 수호이 전투기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 무기 도입, 2022년 완공될 예정인 신(新)행정수도 건설에 투입된 약 45억 달러(약 5조3000억 원)의 중국 자본 등이다.

미국의 핵심 동맹 이스라엘에서도 상황이 비슷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015년 이후 러시아만 무려 아홉 번 방문했다. 2011년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댄 시리아에서 내전이 발발한 후 러시아는 시리아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2015년 중국 상하이항만국제그룹에 향후 25년간 전략적 요충지인 하이파항의 개발 및 운영을 맡겼다.

1991년 걸프전을 계기로 중동에 군대를 대규모로 주둔시켰던 미국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2003년 이라크 침공 때 큰 피해를 봤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는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정책을 통해 사실상 중동에서 발을 뺐다. 이로 인해 시리아 내전, 이슬람국가(IS) 준동 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예 대선 후보 시절부터 “역대 미 정부가 불필요한 국제경찰 노릇을 하며 국력을 낭비했다”고 주창했다. 최근 이란과의 긴장 고조로 중동에 일부 병력을 보내고 있지만 ‘최강대국 영향력’보다 ‘돈’을 중시하는 사업가 출신 대통령의 성향은 바뀌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

○ 군사력 앞세운 러 vs 경제력 내세운 中

2015년부터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러시아는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과 손잡고 군사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압도적 위력을 보유한 러시아 공군의 융단폭격이 반군과 IS에 밀렸던 정부군이 전세를 뒤집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러시아는 시리아를 발판 삼아 이스라엘을 압박하려는 이란, 시리아와 이라크 거주 쿠르드족의 독립을 막으려는 터키 같은 중동 내 다른 강국의 외교안보 전략까지 견제하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핵심 회원국인 터키도 최근 미국의 거센 반발에도 ‘러시아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S-400 미사일을 도입했다. 마크 캐츠 미 조지메이슨대 정치학과 교수는 알자지라에 “러시아는 중동에서 광범위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각 중동국에 ‘러시아와 협력하면 도움이 된다’는 인식을 가지게 했다”고 진단했다.

중국은 최근 쿠웨이트와 전방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이라크와 국경을 맞댄 북부의 신도시 ‘실크시티’를 건설하기 위해 쿠웨이트 정부와 100억 달러(약 11조7800억 원) 규모의 투자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걸프전 당시 이라크에 침공 당한 쿠웨이트는 안보 불안감이 크고, 수도 쿠웨이트시티와 다른 지역 간 인프라 격차가 심하다. 여러모로 중국과 손잡고 경제 및 군사 협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러시아와 중국의 대(對)중동 영향력이 더 커질 가능성도 높다. 한 중동 전문가는 “미국은 각종 지원을 할 때 민주주의, 인권 등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지만 러시아와 중국은 자국 이익에만 부합하면 이런 부분을 전혀 요구하지 않는다. 전제왕정이나 군부가 집권하는 대다수 중동 국가로선 무시하지 못할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중동#러시아#중국#미국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