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공격” vs “정신나간 폭군”…‘한 나라 두 대통령’ 유혈사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4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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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현지시간)베네수엘라 우레나에서 시민과 군이 충돌한 가운데 시위대가 불에 탄 버스를 밀어내고 있다. 우레나=AP/뉴시스
23일(현지시간)베네수엘라 우레나에서 시민과 군이 충돌한 가운데 시위대가 불에 탄 버스를 밀어내고 있다. 우레나=AP/뉴시스
베네수엘라의 ‘한 나라 두 대통령’ 내홍이 유혈사태로까지 번지고 있다.

23일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등이 보낸 구호물자를 반입하라고 요구하는 반정부측 시민들과 이를 거부하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충돌해 최소 4명이 숨지고 300명 이상 다쳤다. 베네수엘라 인권단체인 포로 페날은 “사망자 중에 14세 소년이 포함됐으며, 사인은 총상”이라고 주장했다.

구호물자 불태우며 시민에 총구 겨눈 정부

유혈사태는 예고된 비극이었다.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은 임시 대통령으로 선언한 지 한달 째인 23일, 베네수엘라와 접경한 콜롬비아와 브라질에 보관하던 구호물자를 반입하겠다고 공언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이를 ‘내정 간섭’으로 규정하고 국경을 폐쇄하며 삼엄하게 통제해왔다.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콜롬비아 접경지역인 베네수엘라 우레나의 프란치스코 데 파와 산탄데르 국경다리에는 구호물자를 반입하려는 시민들과 야당인사 수천 명이 몰려들었다. 불과 50m 거리에 식량 등 구호물자를 실은 트럭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반정부 시민들은 국경을 지키는 정부군을 지나 다리 중간 지점까지 트럭을 호송했으나 그 순간 정부군이 구호물자에 불을 질렀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불길에 휩싸인 구호물자를 옮기려고 했으나 정부군이 최루탄을 발사했으며, 고무총탄도 발포됐다. 납으로 된 총알을 맞은 시민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제2 접경도시인 산 안토니오 델 타치라에서도 구호물자를 운반하려는 시민들에게 정부군이 최루탄을 쐈고, 시민들은 군복을 태우고 돌을 던지며 맞섰다. 이날 콜롬비아 정부는 국경에서만 총 285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브라질 북부 국경도시인 파카라이마에 보관돼 있던 구호물자가 유일하게 베네수엘라 국경을 통과했지만, 이 역시 검문소를 통과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군은 콜롬비아로 향하는 국경다리 3개를 잠정 폐쇄했다.

“베네수엘라 공격” 대 “정신나간 폭군”

마두로 대통령은 구호물자 반입을 ‘베네수엘라를 향한 공격’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이날 수도 카라카스에서 친정부 지지자들이 참석한 집회에 참석해 구호물자 반입을 도운 콜롬비아에 외교 단절을 선언했다. 그는 “내 인내심이 고갈됐다. 우리는 콜롬비아 영토가 베네수엘라 공격에 사용되는 것을 더는 참을 수 없다”면서 콜롬비아 대사관과 영사관 직원들에게 24시간 안에 베네수엘라를 떠나라고 말했다.

미국은 마두로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24일 자신의 트위터에 마두로 대통령을 ‘정신 나간 폭군(sick tyrant)’이라고 지칭하며 “인도적 구호물자를 거부하는 마두로를 강력하게 규탄한다” 경고했다. 또 “이제는 절박한 베네수엘라인을 위해 행동해야 할 때”라면서 “베네수엘라의 평화로운 민주주의 회복에 반대하는 자들에게 미국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개입 의지를 드러냈다.

과이도 의장은 소요사태가 진정된 뒤 “오늘 사건이 내게 결단을 내리도록 만들었다. 국제사회는 베네수엘라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옵션을 열어 달라”고 요청했다. 과이도 의장은 25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만날 예정이다. 이날 보고타에서는 베네수엘라 사태 논의를 위해 남미 10개국 외교모임인 ‘리마그룹’ 긴급회의가 열린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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