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분열 선동한 지도자, 진실의 순간 맞는다

  • 주간동아
  • 입력 2019년 8월 10일 20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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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 英 총리, 노딜 브렉시트 강행 땐 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 분리독립 추진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국경에 세워진 브렉시트 반대 표지판. [sky news]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국경에 세워진 브렉시트 반대 표지판. [sky news]

영화 ‘브레이브 하트(Braveheart)’는 1314년 6월 스코틀랜드 왕 로버트 1세가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2세의 침공을 막아낸 배넉번 전투를 그린 작품이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기사 윌리엄 월리스의 죽음에 자극받아 잉글랜드를 상대로 대승을 거뒀다. 스코틀랜드 주민들은 아직도 월리스를 잊지 못하고 있다. 멜 깁슨이 감독과 주연을 맡았던 이 영화는 잉글랜드에 맞서 독립을 쟁취하고자 투쟁한 스코틀랜드 영웅 월리스의 일대기를 잘 그려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기도 했다.

○ 수백 년간 전쟁 벌인 앙숙

이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과거 수백 년간 치열하게 전쟁을 벌였고 지금도 앙숙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다. 그 이유는 스코틀랜드는 그레이트브리튼섬의 원주민인 켈트족이 건설한 왕국이고, 잉글랜드는 원주민인 켈트족을 내쫓고 이주해온 앵글로·색슨족이 건설한 왕국이기 때문이다. 두 왕국은 1603년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가 세상을 떠난 뒤 후손이 없자 먼 친척인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에 오르면서 통합 과정을 밟았다. 두 왕국은 1707년 완전히 합쳐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아직도 민족적 앙금이 남아 있다. 심지어 축구 경기에서 잉글랜드와 프랑스 국가대표팀이 맞붙으면 스코틀랜드 주민들은 프랑스를 응원할 정도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스코틀랜드에선 2014년 분리독립 주민투표가 실시되기도 했다. 당시 투표 결과 분리독립안은 찬성 44.7%, 반대 55.3%로 부결됐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10월 31일까지 유럽연합(EU)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재협상에 응하지 않을 경우 ‘노딜’ 브렉시트를 강행하겠다고 선언하자 스코틀랜드 등에서 분리독립 주장이 나오고 있다. 영국은 흔히 하나의 단일 민족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레이트브리튼섬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섬 북쪽에 있는 북아일랜드로 구성된 연합왕국이다. 영국 국호가 그레이트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인 것도 이 때문이다. 영국은 약칭으로 브리튼(Britain), 연합왕국(United Kingdom·UK)으로 불린다.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는 모두 외교·국방·재정을 제외한 자치정부를 두고 있다. 이들은 과거 독자적인 왕국이었지만 잉글랜드와 통합해 일종의 연방체(聯邦體)가 됐다.

이들 3개 지역 가운데 가장 먼저 잉글랜드에 강제병합된 곳은 웨일스다. 웨일스는 404년 잉글랜드 국왕 헨리 4세에게 점령당했음에도 항쟁을 계속했으며, 1536년에야 잉글랜드와 완전히 합쳐졌다. 아일랜드는 13세기부터 800년 넘게 잉글랜드의 침략을 받았다. 특히 종교적으로 아일랜드가 가톨릭교인 반면, 잉글랜드는 종교개혁 결과 개신교가 성립돼 양측의 갈등은 더욱 심했다. 잉글랜드는 1801년 강제로 아일랜드를 병합했지만 이후에도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은 계속됐다. 결국 1937년 북부 얼스터주를 제외하고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이에 따라 아일랜드 남부지역에서 아일랜드공화국이 출범했고, 아일랜드 북부는 영국의 일부로 남았다. 현재 영국 국명이 그레이트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북아일랜드의 신페인당 지지자들이 노딜 브렉시트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신페인당]
북아일랜드의 신페인당 지지자들이 노딜 브렉시트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신페인당]

웨일스, 노딜 브렉시트 강력 반대

이들 3개 지역에서 분리독립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존슨 총리는 취임 이후 7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이곳을 전격 방문해 영국의 통합과 단결을 강조했다. 이들 지역 중 분리독립을 가장 원하는 곳은 스코틀랜드다. 이 때문에 7월 29일 스코틀랜드를 제일 먼저 방문한 존슨 총리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정치·경제적 연합”이라며 연합왕국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존슨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브렉시트든 노딜 브렉시트든 모두 반대한다”며 제2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대해 존슨 총리는 스코틀랜드의 제2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존슨 총리는 “주민투표는 일생에 한 번, 세대에 한 번 하는 것”이라며 “또 다른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스코틀랜드나 영국 국민에 대한 약속을 어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코틀랜드가 분리독립을 하려는 이유는 노딜 브렉시트로 EU에서 탈퇴한 영국의 일원이 되는 것보다 독립해 EU 회원국으로 가입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존슨 총리는 스코틀랜드의 이런 입장을 감안해 대규모 경제지원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주민들은 노딜 브렉시트 이후 영국에 자신들의 미래를 맡기기는 어렵다는 의견이다. 스터전 수반은 2021년 5월 이전에 제2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방침이다. 스코틀랜드는 인구가 520만 명으로 영국 전체 인구 6000만 명 중 10분의 1도 되지 않지만 영토는 영국 전체 국토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스코틀랜드가 분리독립한다면 영국에 엄청난 타격이 될 수 있다.
웨일스 주민들이 수도 카디프에서 영국으로부터 분리독립 지지 시위를 하고 있다. [walesonline]
웨일스 주민들이 수도 카디프에서 영국으로부터 분리독립 지지 시위를 하고 있다. [walesonline]

아일랜드와 통합 원하는 북아일랜드

웨일스에서도 노딜 브렉시트 반대 목소리가 강하게 나왔다. 존슨 총리는 7월 30일 웨일스 수도 카디프를 방문해 마크 드레이크포드 웨일스 자치정부 수반을 만나 자신이 추진하는 노딜 브렉시트를 지지해줄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드레이크포드 수반은 존슨 총리에게 노딜 브렉시트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드레이크포드 수반은 “노딜 브렉시트로 농업이 타격을 받는다면 농민들이 시민 불복종운동을 전개할 수도 있다”며 “나의 정치 인생에서 연합왕국의 결속이 지금보다 더 위기에 처한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웨일스의 주요 산업은 농축업이다. 전체 인구 310만 명 중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비중이 가장 높다. 웨일스는 그동안 EU로부터 매년 3억 파운드(약 4400억 원)의 농업 보조금을 받아왔다. 영국이 노딜 브렉시트를 강행한다면 웨일스는 이런 농업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영국 쇠고기와 양고기의 유럽 수출이 92% 급감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 경우 웨일스가 경제적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존슨 총리는 노딜 브렉시트가 되면 농업 분야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웨일스 주민은 대부분 노딜 브렉시트에 반대하고 있다. 애덤 프라이스 웨일스민족당 대표는 “독립된 웨일스를 보고 싶은 열망은 오랫동안 먼 것처럼 보였지만 흐름이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아일랜드 내에서는 아일랜드와 통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존슨 총리는 7월 31일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를 방문해 비공개로 북아일랜드 5개 주요 정당 대표들을 만났다. 존슨 총리는 이 자리에서 지난해 11월 테리사 메이 전 총리가 EU와 합의한 ‘안전장치(backstop)’를 끔찍한 것이라고 표현하면서 이를 폐지하는 것을 포함해 EU 탈퇴협정을 재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전장치는 아일랜드 국경에서 ‘하드보더’(Hard Border·국경 통과 시 통행과 통관 절차를 엄격히 적용하는 것)를 피하기 위해 EU와 미래관계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영국 전체를 당분간 EU 관세동맹에 잔류하도록 하는 내용을 말한다. 북아일랜드의 민족주의 정당이자 제2당인 신페인당의 메리 루 맥도널드 대표는 “노딜 브렉시트가 강행된다면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와의 통일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과 아일랜드가 1998년 체결한 벨파스트협정에 따르면 북아일랜드 주민 다수가 통일을 원하면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 벨파스트협정은 1969년부터 30년간 북아일랜드에서 영국 잔류파와 독립파 간 충돌로 3600여 명이 사망하는 등 갈등과 대립이 지속되자 이를 종식시키기 위해 영국과 아일랜드가 체결한 평화조약이다. 이 협정은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하도록 국경을 통제하지 않고 북아일랜드에 자치정부를 수립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노딜 브렉시트가 강행된다면 EU 회원국인 아일랜드는 영국령 북아일랜드와의 국경에서 상품과 사람의 이동을 통제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모두 노딜 브렉시트에 반대하고 있다. 반면 존슨 총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영국은 벨파스트협정을 준수할 것이며, 브렉시트 이후 국경에서 물리적인 검문·검색을 실시하거나 이를 위한 인프라를 설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그레이트 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지도.
영국(그레이트 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지도.

브렉시트 이견으로 연합왕국 존립 기반 흔들

영국 정치권에선 존슨 총리가 노딜 브렉시트를 강행할 경우 영국이 분열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고든 브라운 전 총리는 “존슨은 77대 영국 총리가 아니라 초대 잉글랜드 총리로 기억될 수 있다”며 존슨 총리의 노딜 브렉시트 강행 움직임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영국 유력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어떤 형태의 브렉시트라도 연합왕국의 결속을 약화시킬 것”이라며 “존슨 총리의 브렉시트 계획은 연합왕국의 해체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잉글랜드·북아일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로 구성된 영국의 연합왕국 존립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01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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