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 “폭력 중단시킬 모든 수단 검토”… 52년만에 ‘계엄령’ 시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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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상황때 행정장관에 비상대권
임의 체포-구금… 최대 종신형 처벌
1967년 反英폭동때 단 한번 발동… 야당 “기본권 침해 법치 약화” 반발
일각 “홍콩정부, 中중앙정부와 교감”


홍콩 행정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사진)이 27일 반중(反中) 반정부 시위 진압을 위해 자신에게 비상대권을 부여하는 사실상 계엄령인 ‘긴급법’을 52년 만에 발동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시사해 파장이 커지고 있다. 31일로 예정된 대규모 시위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할 경우 홍콩 정부가 긴급법 발동의 빌미로 삼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람 장관은 이날 “긴급법을 검토하느냐”는 홍콩 기자들의 질문에 “정부는 폭력과 혼란을 중단시키기 위해 법적 수단을 제공하는 홍콩의 모든 법률을 검토할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 앞서 친중 성향의 홍콩 매체인 싱다오(星島)일보가 “홍콩 정부가 행정회의에서 긴급법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보도한 것을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에드워드 야우 홍콩 상무경제발전국장도 이날 “긴급법을 적용해도 홍콩의 상업 무역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띄웠다.

긴급법의 정식 명칭은 긴급상황규례조례(緊急狀況規例條例)다. ‘긴급 상황 때 공중의 이익을 위해’ 행정장관에게 막대한 권한을 부여해 입법회(국회) 승인 없이 법령을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긴급법에 따라 행정장관은 임의로 체포 구금 추방 압수수색을 시행할 수 있고 최대 종신형의 처벌을 결정할 수 있다. 홍콩 출·입경을 포함해 모든 교통·운송수단을 통제할 수 있다. 출판 통신에 대한 검열과 금지가 가능하고 재산 전용과 몰수도 가능하다. 행정장관은 기존 성문법도 수정할 수 있다.

이 법은 영국 식민지 시절인 1922년에 만들어진 뒤 현재까지 97년 동안 1967년에 딱 한 번 발동됐다. ‘6·7 폭동’으로 불리는 반(反)영국 좌익 폭동 당시 홍콩 정부는 3인 이상 집회도 불법 집회로 규정해 해산하게 하고 특별한 이유 없이도 사법 당국이 시민을 체포해 1년까지 구금할 수 있게 했다.

홍콩 정부의 긴급법 검토가 중국 중앙 정부와의 교감 속에 이뤄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홍콩 밍(明)보에 따르면 이달 초 홍콩과 맞닿은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시에서 열린 홍콩 시국 관련 좌담회에서 홍콩 행정장관에게 계엄령 발동 권한을 부여한 ‘공안 조례’ 실시 문제가 거론됐다.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홍콩 산업계가 국가법(중국 본토법)을 적용하기 위한 국가 비상사태 선포를 요구했다”며 긴급 상황 분위기를 띄우고 나섰다. 홍콩의 헌법인 기본법 18조에 따르면 홍콩 정부가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중국 중앙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홍콩에 중국의 법률을 적용할 수 있다.

홍콩 야당은 “긴급법 적용은 계엄령 선포”라며 “기본적 자유를 침해하고 평화적인 집회 권리를 빼앗아 법치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달 31일에는 행정장관과 입법회 직접선거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예정돼 있고 시위대가 주홍콩 중국연락판공실까지 행진할 계획이어서 충돌이 우려된다. 홍콩 경찰은 27일 기자회견에서 6월 9일 이후 80일 동안 883명이 체포됐고, 이 가운데 136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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