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도 ‘아내의 말’ 배운다면”…다문화가정 통역 돕는 ‘선배’ 결혼이주여성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7일 17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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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출신으로 서울 중랑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중랑다문화센터)에서 ‘생활통역사’로 활동하는 미츠 페아룬 씨(30)는 지난달 말 경찰서에서 통역 요청을 받았다. 경찰서에는 페아룬 씨처럼 캄보디아 여성-한국인 남편 다문화부부가 와있었다. 이들 부부는 언어장벽에 따른 오해로 부부싸움이 격해져 경찰서까지 찾은 것이다. 페아룬 씨는 “처음에 통역을 하며 안타깝고 속상했지만 오해가 풀린 후에는 다시 잘 지내보겠다면서 돌아갔다”고 안도했다.

이달 초 언론을 통해 CCTV 영상이 공개되며 공분을 샀던 베트남 여성 폭행 사건에서도 남편이 “한국말이 서툴다”고 아내를 때렸다고 알려졌다. 언어장벽이 폭력을 합리화할 순 없지만 다문화부부에게 언어는 큰 갈등 요인이다.

12일 중랑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한국어가 서툴러 어려움을 겪는 다문화 가정의 통역을 돕는 ‘선배’ 결혼이주여성 페아룬 씨와 후안티 푹록 씨(28·베트남)를 만나 다문화가정을 위한 조언을 들었다.

● 후배 다문화부부에 조언, “말 통할 때부터 사이 돈독해져”

두 사람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2013년에 한국에 와서 현재 두 아이의 엄마다. 또 두 사람 모두 지금은 ‘통역사’지만 처음 왔을 때 한국어는 한 마디도 제대로 못했다.

푹록 씨는 한국에 먼저 시집 온 사촌언니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술을 안 마시고 성품이 온화하다’고 소개를 받았고 반 년 간 영상 통화로 얼굴을 익힌 후 결혼했다. 영상 통화에서는 사촌언니가 통역을 담당했지만 사촌언니 없이 남편, 시어머니와 부딪히자 바로 언어 문제가 생겼다.

그는 두 달 간 시어머니와 서울 시내 재래시장을 다니며 한국어를 익혔다. 시어머니가 가리키는 물건들의 이름이 배추, 바구니, 칼 등이라는 것을 배우고 이후 중랑다문화센터에서 한글을 배웠다. 일주일에 3~4회 3시간씩 공부를 하다보니 어느새 한국 뉴스도 그럭저럭 볼 수 있게 됐다. 페아룬 씨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안정적인 다문화부부로 안착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의사소통을 꼽았다. 페아룬 씨는 “남편과 같이 있으면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있었다”며 “마음 속 얘기는커녕 ‘배고프다’같은 기본 의사소통도 되지 않을 땐 ‘내가 왜 여기 와서 이렇게 힘든가’ 속상하기도 했다”고 했다. 남편과 가까워진 것은 이들의 한국어가 어느 정도 늘었을 때였다. 푹록 씨는 “남편이 예전엔 ‘말해봐야 못 알아듣겠지’ 하면서 말하지 않던 집안 사정이나 가계에 대해 의논하면서 사이가 돈독해졌다”고 말했다.



●남편도 ‘아내의 말’ 배운다면…

두 사람 중 폭록 씨는 국제결혼중개업체를 통한 혼인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는 “사실 그런 방식의 결혼은 사라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면서 “돈 보고 시집 왔다는 비난이 있다는 것도 알고, 또 ‘돈을 냈다’며 함부로 하는 남편도 있다”고 했다. 또 한국인 남편이 업체에 내는 금액에서 항공비와 업체 수수료 등을 빼면 실제로 아내의 가족에게 전달되는 액수는 일부다. 푹록 씨는 “아는 사람 중 남편은 업체에 2000만 원을 냈다고 하는데 여자 쪽에서 받은 돈은 20만 원인 경우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중개업체를 통해 남편을 만난 페아룬 씨는 “부모님은 ‘우리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남편이 나쁜 사람이면 어쩌려고 멀리 가느냐’며 반대했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에 호기심을 갖고 왔다”며 “저처럼 남편과 잘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오는 사람들도 많으니 조금만 따뜻하게 봐주면 고마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한국 생활에서의 포부로 푹록 씨와 페아룬 씨는 각각 ‘자녀들에게 이중 언어를 잘 가르치는 것’과 ‘캄보디아-한국 통역사’라는 포부를 밝혔다.

다만 이들은 현재 다문화부부 간 의사소통이 전적으로 외국 출신인 아내의 노력에 달려있다는 것을 아쉬워했다. 두 사람 남편 모두 베트남어나 캄보디아어 등 아내의 모국어는 할 줄 모른다. 페아룬 씨는 “남편이 일을 하니 시간이 없어 이해하지만 캄보디아어를 하면 우리 가족하고도 이야기할 수 있고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수진 중랑다문화센터 국장은 “최근에 다문화 자녀에게 엄마의 모국어를 가르쳐 이중언어환경을 만들어주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다른 가족들은 영어, 일어 등 활용도가 높은 경우를 빼고 극히 드물다”며 “물론 이주여성들이 한국 사회 적응을 위해 한국어를 습득해야 하지만 무조건 여성들에게만 (한국어와 문화를) 주입하는 것보다 가족들도 이주여성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예윤기자 yea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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