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정상회담 무산 책임 어디에…“양국 정부 피차 소극적”

  • 뉴시스
  • 입력 2019년 6월 25일 19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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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쟁점화 外 양자 회담 소극적인 日…靑 "아직 준비 안된 듯"
과거-미래 '투트랙' 유지…靑 "전향적 노력 중, 수용은 일본 몫"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이틀 전에야 한일 정상회담 무산을 공식화한 것은 책임론을 비켜가기 위한 의도가 담긴 것으로 우선 해석된다.

그러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을 연결고리로 정치 쟁점화 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이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을 무조건적으로 적극 추진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5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G20 기간 중 한일 정상회담 일정이 확정됐는가’라는 질문에 “한일 정상회담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로서는 항상 만날 준비가 돼 있지만 일본이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한일 정상회담 성사 여부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산의 책임은 한국이 아닌 일본에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확정된 바 없다”며 줄곧 가능성을 열어뒀던 청와대가 명시적으로 한일 정상회담의 무산과 함께 그 책임을 일본으로 돌린 것은 최근 일본 보수 언론의 보도 행태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산케이 등 일본 언론을 통해 잇딴 한일 정상회담 무산에 대한 불리한 여론이 조성되는 것을 막고자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사히는 지난 12일 “강제징용 문제로 G20 때 한일 정상회담 개최는 어려워지고 있다”며 “만일 한일 정상이 접촉한다면 단시간 서서 이야기 하는 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산케이는 지난 19일 “일본 정부는 한국 측이 관계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성과 있는 회담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G20 기간 중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하지 않기로 한 방침을 확정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가 그동안 물밑에서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던 데에는 마지막까지 추진해 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는 G20 기간 중 약식 회담 형태로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열어뒀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G20 정상회의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역만을 대동한 ‘풀 어사이드(pull aside)’ 방식의 한미 정상회담을 현지 결정으로 가진 바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G20) 현장에서 일본 측에서 만나자고 요청을 해오면 우리는 언제든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G20 주최국의 제안에 따라 양자회담을 가져왔던 관례를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참석했던 G20 정상회의에서 주최국 정상의 제안으로 양자 회담을 항상 가져왔다. 2017년 독일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 때는 베를린에서 앙헬라 메르켈 총리와 한·독 정상회담을 했다. 지난해 부에노스아이레스 G20 때는 마우리시오 마끄리 대통령과 14년 만의 한·아르헨티나 정상회담을 했었다.

이번의 경우 일본 정부로부터 직접적인 양자회담 제안을 받지 않았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고위 관계자는 “일본이 우리에게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은 없다. 우리는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는데도, 그 쪽(일본)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 말했다.

G20 주최국으로서 양자 회담을 제안하지 않은 일본 정부 탓에 무산됐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지만, 복잡하게 얽힌 한일 양국의 이해관계 속에 피차 소극적이었던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G20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고, 본격적인 북미 비핵화 대화 재개를 위한 노력에 집중하기 위해 당장 급한 현안이 걸려있지 않은 한일 정상회담을 후순위로 미뤘을 수 있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를 중재위원회에서 풀자는 일본의 제안에 우리 정부가 한일 기업이 참여하는 기금 조성으로 해결하자며 역제안 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명분은 갖췄다는 평가다.

아베 총리는 당초 한달 앞으로 다가온 참의원 선거를 위해 한일 정상회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 외에 목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가시적 성과를 담보하기 힘든 양자 회담을 무리하게 추진할 이유가 없다는 현실론이 지배적이다.

참의원 선거 이후 한일 정상 간 만남을 추진하는 것이 더 적절한 방안일 수 있다는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언급도 이러한 맥락 위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일방적으로 끌려갈 수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당분간 냉랭한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해 전면에 직접 나서기보다는 현재와 같이 외교부와 국무총리실을 중심으로 풀어간다는 방침을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사 문제와 미래지향적 협력은 별개의 사안으로 ‘투 트랙’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가 한일 양국 민간기업의 자금을 출연하는 형태로 풀자고 제안한 것은 관계 개선을 위해 전향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봐야한다”며 “이를 수용하느냐의 여부는 전적으로 일본 측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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