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감정 건드릴라… 방송-유튜브 ‘일본 콘텐츠’ 자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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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무역 보복조치 후폭풍
여론에 민감한 TV예능 프로그램, 일본 촬영 취소하고 국내로 변경
일본 관련 영상 올린 유튜버… 비난 댓글 쏟아져 영상 삭제

일본은 여행 예능의 단골 촬영지였지만 최근 반일 감정이 격화되자 tvN ‘더 짠내투어’와 KBS ‘배틀트립’은 일본을 차후 촬영지에서 배제했다. 지난달 1일 방영된 ‘더 짠내투어’의 일본 요코하마 촬영분. tvN 제공
일본은 여행 예능의 단골 촬영지였지만 최근 반일 감정이 격화되자 tvN ‘더 짠내투어’와 KBS ‘배틀트립’은 일본을 차후 촬영지에서 배제했다. 지난달 1일 방영된 ‘더 짠내투어’의 일본 요코하마 촬영분. tvN 제공
“반일 감정을 건드렸다간 큰일 나죠. 행여나 공든 탑 무너질까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중견 연예기획사 A사는 최근 소속사 배우 10여 명에게 ‘일본 여행 자제령’을 내렸다. “이유를 막론하고 논란을 만들지 않겠다는 취지”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만 이런 조치에 나선 데엔 까닭이 있다. 최근 배우 이시언이 일본에 사는 친구를 방문한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재했다가 “시기상 적절치 않다”며 여론의 반발이 거셌다. 이 씨는 곧장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일관계가 나빠지자 방송·연예계에도 ‘붉은 경고등’이 켜졌다. 방송국이나 제작사는 아예 해외 촬영지 목록에서 일본을 제외하고 있다. 일본 콘텐츠를 자주 다루는 유튜버나 크리에이터들은 ‘악플’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다.

가장 반응이 민감한 분야는 ‘댓글에 취약한’ TV 예능 프로그램이다. 몇몇 방송사는 잡혀 있던 일본 로케이션도 취소하고 있다. 한 케이블채널 예능도 이미 일본 현지 촬영을 포함한 기획안이 확정된 상태였지만 최근 국내로 변경했다. 관계자는 “보통 해외 촬영을 고려할 때 시간까지 고려한 ‘가성비’가 좋아 일본을 자주 선택해 왔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반일 감정이 수그러들 때까지 자제하기로 했다”고 했다.

특히 여행 예능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략 방영 1개월 전에 미리 촬영해 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확인 결과, 현재 방영 중인 대표적 여행 예능들은 ‘다행히’ 일본 편이 남아있지 않아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KBS ‘배틀트립’과 tvN ‘더 짠내투어’ 제작진 모두 “예정된 방영분도 없고, 당분간 대상지로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유명 유튜버 이사배는 7일 일본 화장품 브랜드의 마스카라를 사용한 메이크업 영상을 게재했다 비난이 거세지자 “민감한 사안에 대해 빠르게 처리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SNS 캡처
유명 유튜버 이사배는 7일 일본 화장품 브랜드의 마스카라를 사용한 메이크업 영상을 게재했다 비난이 거세지자 “민감한 사안에 대해 빠르게 처리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SNS 캡처
하지만 이미 유튜브 등 SNS에 올린 일본 콘텐츠가 발목을 잡기도 한다. 특히 경색 분위기 직전 올린 게시물이 갑자기 ‘댓글 전쟁터’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일본 여행 정보를 담은 브이로그가 대표적인 표적이다. “분위기 파악 좀 하라”는 비난과 “여행은 개인의 자유”라는 옹호가 첨예하게 맞붙는다. 하지만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문구가 적힌 불매운동 포스터가 SNS에서 화제일 정도로 비난 목소리가 훨씬 압도적이다. 구독자 217만 명의 인기 뷰티 유튜버인 이사배도 최근 일본 화장품 마스카라를 소개했다가 논란이 거세지자 영상을 삭제하고 “신중하지 못했다”는 사과문을 게재했다.

이미 찍어놓았던 일본 콘텐츠의 업로드(게재)를 포기하는 유튜버들도 많다. 지난달 사비 300만 원을 들여 일본 촬영을 다녀온 한 ‘먹방’ 유튜버는 “이미 편집까지 마쳤지만 구독자가 줄어들까 봐 업로드를 포기했다”고 했다. 구독자가 1만 명이 넘는 한 여행 유튜버도 최근 촬영한 일본 여행 영상을 결국 삭제했다. 그는 “하루에 500명씩 구독을 취소하고 ‘매국노’라고 개인 쪽지까지 보내는데 버틸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전자제품 전문 유튜버도 타격이 크다. ‘신상’에 대한 후기를 발 빠르게 올려 인기를 끌고 있는 박모 씨(34)는 “카메라나 게임기는 대부분 일본 제품인데, 아예 콘텐츠 제작을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울상을 지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도 “SNS는 소비자 반응이 빠르고 확산력이 커서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국내 콘텐츠 시장에서 일본이 차지했던 비중이 컸던 만큼 당분간 콘텐츠 제작이 상당히 위축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반일 감정#일본 수출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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