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김도영 감독 “영화 속 누구든 ‘악당’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24일 16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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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의 김도영 감독은 결이 고운 영화로 소설이 재탄생한데 대해 조남주 작가의 원작이 가진 이야기의 힘, 작품과 역할을 잘 이해하고 각자의 몫을 충분히 해낸 배우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82년생 김지영’의 김도영 감독은 결이 고운 영화로 소설이 재탄생한데 대해 조남주 작가의 원작이 가진 이야기의 힘, 작품과 역할을 잘 이해하고 각자의 몫을 충분히 해낸 배우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어렵게 세상에 나온 자식 같은 영화를 두고 평점을 낮추거나 악플을 달아도 ‘엄마’는 의연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개봉한 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김도영 감독(49)은 태어나기 전부터 문제아라고 낙인찍힌 아이를 살뜰히 보듬는 엄마의 모습에 가까웠다.

“원작 소설을 읽은 뒤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처음으로 한 발자국 떨어져 엄마와 제 자신,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풍경을 바라보는 느낌이었거든요. 그걸 절대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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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소설이 사회적으로 불러일으킨 반향을 담으며 영화 장르로서 완결된 서사를 갖추기 위해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한번도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엄마나 고모가 생각났어요. 지영의 엄마 ‘미숙’ 뿐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인물들, 딸들에 관한 이야기에 마음을 담으면 그 가치가 드러날 것이라 믿었습니다.”

배우 정유미의 연기는 ‘김지영’ 이야기가 갖는 보편성에 공감을 더했다는 평을 받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정유미의 연기는 ‘김지영’ 이야기가 갖는 보편성에 공감을 더했다는 평을 받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지영의 1인칭 독백 같은 소설은 그의 손길을 거쳐 지영과 가족, 그리고 누구나 공감할 ‘모두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영화는 개봉 첫날 13만 8968명의 관객이 찾아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했다.

개봉 전부터 촉발된 젠더 갈등을 무력화하듯 영화에는 어떤 악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누구든 ‘빌런(악당)’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인물들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했어요.”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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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도는 주연배우 정유미와 공유 뿐 아니라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역을 맡은 동명이인의 두 김미경, 귀한 외아들로 자란 남동생 역의 김성철 등 조연 배우들의 명품 연기 덕분에 개연성을 얻었다.

그는 이 영화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고 했다. 평범한 ‘김지영’의 이야기가 퍼져나가 일본과 대만에서 소설이 화제가 됐듯, 영화 역시 호주, 홍콩, 대만 등 37개국에 판매돼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그의 희망은 이 영화가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가서 말을 거는 것,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무언가 느끼면 그걸로 충분해요. 중요한 건 살아가면서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작은 변화라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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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지영은 마침내 가슴이 ‘쿵’ 내려앉으며 하고 싶은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시간을 매듭짓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연극 무대와 결혼, 출산, 육아를 거쳐 47세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과정으로 연출을 공부하고, 49세 때 첫 장편 영화를 만든 김 감독의 삶과도 맞닿아있다. 수족구에 걸려 등원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에 갔던 일, 아기띠와 한 몸이 돼 보낸 시절은 ‘82년생 김지영’ 뿐 아니라 ‘70년생 김도영’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시 사회로 나가길 머뭇거리는 ‘지영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의 눈가가 붉어지더니 한참을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젊을 땐 누구나 산을 끝까지 올라가는데 의미를 두지만, 나이가 든 지금은 원하는 방향으로 한 발이라도 내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말 소중한 건 우리 내면의 목소리니까요. 그런 것들을 경험하고, 깨우친 뒤 이 영화를 만난 것이 참 다행이에요.”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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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마무리 될 무렵 그의 스마트폰에 영화를 본 지인들의 감상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이 자라서 이 영화를 볼 즈음엔 세상에! 저런 시절도 있었구나 하겠지?’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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