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자신의 목소리를 잃은 여자가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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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개봉 ‘82년생 김지영’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원작으로 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평범한 82년생 여성 김지영이 결국 자신의 말을 찾으며 성장해 가는 이야기로 원작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원작으로 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평범한 82년생 여성 김지영이 결국 자신의 말을 찾으며 성장해 가는 이야기로 원작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지영 씨는 한 번씩 다른 사람이 되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기도 했고, 죽은 사람이기도 했는데, 모두 김지영 씨 주변의 여자였다.’ (소설 ‘82년생 김지영’)

소설과 영화는 모두 똑같이 자신의 목소리를 잃은 한 여자에서 시작한다. 남편 정대현(공유)과 함께 딸을 키우는 82년생 주부 김지영(정유미)은 어느 날부터 마치 ‘빙의’된 것처럼 다른 사람의 말투로 말하기 시작한다. 시어머니를 친정 엄마의 목소리로 ‘사부인!’이라고 부르거나 어느 날 밤에는 죽은 친구 같은 말투로 남편을 부른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원작으로 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23일 개봉한다. 원작이 정신과 의사의 상담 기록을 바탕으로 주인공 김지영의 인생을 어린 시절부터 연대기적으로 서술했다면 영화는 지영의 이 이상 행동을 시작으로 이 지극히 평범한 주부의 일상을 한 꺼풀씩 걷어내며 지영의 마음과 주변을 들여다본다.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언니와 가고 싶은 나라에 스티커를 붙이던 어린 시절, 자신감 넘치고 일 욕심도 많던 직장 시절을 거쳐 마침내 지영은 한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로 살아간다. 육아와 살림으로 매일 닫힌 문을 열면 또 닫힌 문이 기다리고 있는 반복되는 일상 속 지영의 이상한 행동에 남편 대현은 가슴 아파하고, 지영은 그만둔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기대를 갖지만 그 앞에 펼쳐진 현실은 녹록지 않다.

2016년 출간 이후 2년 만에 누적판매 100만 부를 돌파한 조남주 작가의 원작 소설은 소설 출간부터 환호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영화 역시 개봉 전부터 올해 5월 개봉한 영화 ‘걸캅스’와 마찬가지로 논쟁에 휩싸였다. 영화의 주제의식과 개봉을 지지하는 의미로 티켓을 구매하는 ‘영혼 보내기’와 여러 차례 관람하는 ‘N차 관람’을 독려하는 한편에는 개봉 전부터 ‘1점’으로 평점 테러를 하는 움직임도 있다.

영화는 거세지는 남녀 갈등의 격랑 속에서 갈등에 더욱 불을 지피는 것보다는 소설에 등장하는 가부장제와 남아선호사상, 성차별을 담담하게 엮어 이해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쪽을 택했다.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온전히 꾸리기 위해 여성들은 대를 이어 어떤 희생을 감내하는지 풀어낸다는 면에서 ‘여성’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엄마’의 이야기다. 특히 드라마 ‘고백부부’와 ‘또, 오해영’에서 바로 그 ‘엄마’역의 배우 김미경이 연기하는 친정 엄마 ‘미숙’ 연기가 여운을 남긴다.

우리 주변의 가족들이 그렇듯 영화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도 악인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외동아들에게만 보약을 지어주는 지영의 아버지도, 며느리보다는 딸과 아들을 더 챙기는 지영의 시어머니도 마찬가지다. 김도영 감독은 “개인보다는 사회의 시스템과 문화, 관습 등 사회적인 풍경을 짚고 싶었다. 그것이 원작과 가까운 의도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소설과 달리 남의 입을 통해서만 목소리를 내던 지영이 마침내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는 과정을 그리며 한발 더 나아간다. 김 감독은 영화를 본 조남주 작가에게서 “소설보다 한발 더 나아간 이야기라 선물을 받은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김 감독은 “2019년을 살아가는 김지영에게 ‘괜찮아 더 나아질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지영이 엄마보다는 지영이가, 지영이보다는 딸 아영이가 더 잘 살아갈 것이라는 마음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82년생 김지영#n차 관람#평점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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