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주부·육아는 불행한가 vs 진보한 젠더 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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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0월 20일 0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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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스틸 © 뉴스1
82년생 김지영 스틸 © 뉴스1
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은 개봉 전부터 논쟁적인 작품이 됐다. ‘페미니즘 소설’로 분류되는 조남주 작가의 동명의 소설이 원작으로, 영화화 소식이 전해졌을 당시부터 젠더 이슈로 논쟁의 중심에 섰고 영화가 소설과 달리 젠더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을지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14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처음 공개된 ‘82년생 김지영’은 여전히 여성 스스로에 대한, 지나치게 비관적인 관점을 벗어나지 못했으나, 소설보다는 진보한 젠더 감수성으로 여성 영화로서는 고무적인 방향을 제시했다는 인상을 남겼다.

‘82년생 김지영’은 1982년에 태어난 지영(정유미 분)이 2019년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일을 그만 둔 뒤, 육아와 집안 일을 하는 일상적인 모습에서 시작된다. 2019년에는 며느리와 엄마, 딸로서 그리고 과거에는 직장 여성과 여학생으로서 남자가 아니어서 부당하게 차별받고 희생되는 이야기가 잇따라 전개된다. 스스로가 갇힌 듯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영은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이 된 듯 말하기도 하고, 그런 지영을 남편 대현(공유 분)이 안타깝게 바라본다. 지영은 옛 직장 상사가 새롭게 팀을 꾸려 회사를 차린다는 사실을 듣고 재취업 희망을 갖게 되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영화의 주인공 김지영은 소설과 마찬가지로 현실의 한 개인의 모습을 그렸다기 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이 겪을 법한 갖은 차별과 부당함을 응축시킨 캐릭터다. 태어나서는 남아선호 사상 탓에 딸이라는 이유로 아들인 남동생에게 밀려야 했고, 청소년기에는 밤길에 남학생의 타깃이 되기도 하고, 직장인이 돼서는 능력이 있음에도 남자 동료들에 밀려 승진이 좌절되기도 한다. 결혼해서는 자녀 출산을 종용받고, 자녀가 태어나고서는 경력 단절을 겪고 육아와 가사에 시달리게 된다. 명절 시댁 가사 노동은 당연히 며느리의 몫이고, 아이를 데리고 외출했을 때는 ‘맘충’이라는 폭언을 견뎌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이야기의 저변에 여성이 남성과 성별 하나가 다르다는 이유로 희생과 차별을 겪을 수밖에 없는 맥락이 깔려있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김지영이 자존감과 주체적인 삶을 찾기 위해 선택하고 싶은 길은 육아와 가사를 하는 여성이 아니라, 일하는 여성이 되는 것이다. 여성이 자신을 억압하는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직장생활에서 능력을 마음껏 펼치는 모습이 제시되고, 육아와 가사를 하는 주부의 삶은 마치 불행한 것으로 귀결짓는 방향성이 보인다. 직장인으로, 혹은 주부로 사회적 역할에 따라 여성이 자존감 있는 주체적인 삶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단지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만 매몰된 영화의 얕은 관점이 아쉽다.

젠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소설보다 한발 나아간 점은 고무적이다. 대현(공유 분)은 현실을 손놓고 방관만 하지 않고 지영을 누구보다 이해하려 애쓰는 남편으로 그려진다. 지영의 재취업을 돕기 위해 육아 휴직도 고려하는 등 쉽지 않은 현실을 함께 고민해주는 그런 남편이다. 아내의 육아와 재취업 등 고민을 자신의 것으로도 가져오는 남편의 모습으로, 요즘 더 나은 시스템 속에서 아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향을 찾아보려 하는 남성을 균형적인 시각으로 담아내려 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육아와 아내의 경력 단절에 따른, 다른 성별의 고민을 이해하기 위한 젠더 감수성은 소설보다 진보했다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

소설 출간 당시인 2016년 보다 3년이 흐른 2019년, 그 사이 수많은 젠더 논쟁이 오고 갔다. 지금 사정에 알맞는 시의적인 연출도 필요로 했으나, 3년 전에 들었다면 곱씹게 될 대사가 2019년에는 다소 진부하게 다가오는 측면도 있었다. “여자가 단정히 입고 다녀” “여자가 피해 다녀야지, 못 피하면 못 피한 사람 잘못이야” “아무데서나 웃고 다니지 말아야지”라는 김지영 아버지의 대사는 낯뜨거울 만큼 전형적이고, 회사 내에서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몰카 범죄 에피소드는 매우 작위적이다. 모두 대한민국 사회는 여성이 살기 힘든 사회라는 것을 주입하기 위해 강요하는 듯한 부자연스러운 장치로 여겨진다.

젠더 이슈를 넘어 감동을 안기는 것은 지영과 지영 엄마(김미경 분), 이들 모녀의 이야기다. 여성으로서 딸이 엄마를, 엄마가 딸을 이해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연대해가는 과정은 정유미와 김미경의 열연으로 감동을 더한다. 정유미의 일상성을 띈 연기도 인상적이다. 로맨틱 코미디 주인공으로 사랑받았던 그가 ‘윰블리’를 지우고 보여준 평범한 여성의 모습은 자연스러운 일상 연기와 밀도 높은 감정 연기로 표현됐다.

이 영화로 3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공유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남편으로 분해 정유미와 부부 호흡을 맞췄다. 현실에 닿아 있는 드라마에 공유라는 상업적인 캐스팅은 매우 영화적으로 다가온다. 오는 23일 개봉.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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