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국내 첫 탐정소설 ‘마인’, 그 인기비결은 차별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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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은 외국에서 수입된 장르라 그런지 국내 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도 셜록 홈스나 오귀스트 뒤팽 같은 명탐정을 낳은 베스트셀러 추리소설이 있었다. 1939년 발표돼 30판이나 인쇄됐던 국내 최초의 장편탐정소설 ‘마인’이 그 주인공이다. 마인이 외국 추리소설의 공세 속에서 인기를 끌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55호에 실린 ‘베스트셀러로 본 트렌드’ 내용을 요약해 싣는다.

1930년대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유럽과 미국, 일본의 추리소설이 출판 시장을 장악했다. 독자들의 기대치가 수입 소설들에 맞춰진 상황에 국내 작품은 수준 이하였다. 하지만 마인은 원조와 다른 것을 만드는 전략을 택했다. 원조가 보여준 추리소설의 핵심, 예컨대 기묘한 수수께끼, 치밀한 논리, 잔혹한 범행과 절절한 로맨스 같은 양념을 분석해 소화한 뒤 새로운 설정을 추가했다. 핵심이 되는 설정은 바로 여러 명의 명탐정이다. 마인에는 특이하게도 복수의 명탐정이 등장한다. 조선 최고의 명탐정으로 이름 높은 유불란, 그를 질투하며 명탐정의 자리를 노리는 임세훈 경부, 그리스 조각처럼 잘생긴 오상억 변호사, 행동파 탐정소설가 백남수 등이다.

사건은 조선 최고의 미인 무용가 주은몽이 나이 많은 백만장자 백영호와 약혼을 기념해 연 조선 최초의 가장무도회장에서 시작된다. 피에로로 분장한 범인은 주은몽과 백영호 일가의 목숨을 위협하며 그들을 공포에 몰아넣는다. 원조 추리소설에서라면 날카로운 관찰력과 뛰어난 이성을 겸비한 한 명의 명탐정이 나서서 수수께끼를 하나씩 밝혀나갈 차례다.

하지만 마인의 자타공인 명탐정 유불란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의 이성은 사랑 앞에서 한없이 둔해진다. 냉철한 추리는 절절한 사랑에 가로막혀 자꾸 좌초된다. 이로 인해 생겨난 공백에서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명탐정들이 활약할 기회를 얻는다. 각양각색의 명탐정들의 활약은 로맨스, 활극, 액션을 중심으로 하는 흥미진진한 재미를 마인에 채워 넣는다.

‘너무 많은 명탐정’이란 설정은 언뜻 보면 추리소설의 법칙을 통째로 무시하는 것 같다. 본래 명탐정은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데서 독특한 아우라를 얻기 때문이다. 빛나는 지성과 카리스마, 날카로운 관찰력, 대범한 상상력 같은 자질들이 모두 합쳐진 한 사람이 우리가 생각하는 명탐정이다. 하지만 마인은 이 법칙을 과감하게 무시하고 여러 명의 명탐정을 한꺼번에 등장시킴으로써 원조에는 없던 재미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정수를 유지하면서 원조와 차별화하는 성공 공식을 보여준 것이다.

이경림 서울대 국문과 박사 plumkr@daum.net

정리=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
#국내 첫 탐정소설#마인#차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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