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백화점 등 특약매입 심사지침 제정에… 유통업계 반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31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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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31일 ‘대규모 유통업 분야 특약매입 부당성 심사지침’을 제정해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당초 이 지침을 제정과 동시에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범정부 차원에서 진행하는 코리아세일페스타 행사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2개월의 유예기간을 뒀다. 유통업계가 심사지침을 숙지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도 들었다.

하지만 백화점, 아웃렛,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는 2개월의 유예기간이 의미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당장 내년부터 대규모 할인 행사를 진행할 때 수익성 악화가 예상되고 법 위반 소지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대규모 유통업체들이 특약매입을 하면서 가격 할인행사에 따른 부담을 입점업체에 떠넘기고 있다고 봤다. 현재 유통업체들은 특약매입에 따라 반품이 가능한 조건으로 입점업체로부터 상품을 외상으로 사들여 판매한 뒤 수수료를 뗀 나머지 금액을 주고 있다. 공정위는 이 과정에서 ‘갑질’이 발생하기 쉽다고 판단했다. 유통업체가 재고 부담도 지지 않고 수수료만 받는 손쉬운 방식을 이용해 입점업체를 할인행사에 참여하도록 강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갑질 예방을 위해 2014년 특약매입 지침을 마련했고, 최근에 존속기한 만료에 따라 새 지침을 만들었다. 새 지침의 핵심은 유통업체가 할인행사를 할 때 생기는 가격인하분도 백화점의 판촉비에 포함시킨다는 점이다. 그동안은 입점업체가 할인분을 부담했지만, 백화점도 이 부담을 나눠 가지라는 취지다. 공정위는 유통업계 갑을 구조 개선을 위해선 판촉비 분담 원칙이 자리를 잡아야 하고, 중장기적으로 유통업체 입점업체 양측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공정위 발표에 백화점업계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며 비판했다. 통계청 조사 결과 지난해 기준 온라인 시장 규모가 110조 원에 달해 백화점(30조 원)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백화점을 무조건 ‘갑’로 규정하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온라인 채널이 다양해져 입점업체와의 관계가 더욱 중요해졌다”며 “갑질이 발생하면 해당 건을 처벌하면 되는데 정부가 업계 전체와 소비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백화점업계는 공정위 방침대로면 정기세일을 폐지해야 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물건을 팔수록 적자를 볼 수 있는 데다 법을 위반할 가능성도 커졌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예외적으로 입점업체가 자발적으로 요청해 차별화되는 판촉행사에 참여하는 경우엔 상호 협의를 통해 판촉비 부담 비율을 정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자발성’과 ‘차별성’의 기준이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정기세일 일정을 알려주는 공문만 보내도 업체가 이를 강압적 통보라고 주장할 경우 대응할 방법이 없다”며 “차별성 역시 다른 백화점의 정기세일과 비교해 어떤 상품을 어떻게 세일하기로 해야 차별화된 건지 공정위 해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세종=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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