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경지에 오른 차들을 만난다… 콩쿠르 델레강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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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올해 빌라 데스테 최우수 출품차로 뽑힌 알파 로메오 8C 2900B는 지난해 페블비치에서도 수상했다. 사진제공 Kimball Studios / Pebble Beach Concours d'Elegance
올해 빌라 데스테 최우수 출품차로 뽑힌 알파 로메오 8C 2900B는 지난해 페블비치에서도 수상했다. 사진제공 Kimball Studios / Pebble Beach Concours d'Elegance
지난 5월 24일부터 26일까지 이탈리아 북부 코모 호반의 유서 깊은 리조트인 빌라 데스테(Villa d‘Este)에서는 수십 대의 클래식카가 멋진 자태를 뽐내는 행사가 열렸다. 행사 이름은 콩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Concorso d’Eleganza Villa d‘Este). 우리말로 바꾸면 ‘빌라 데스테에서 열리는 예술적인 자동차 경연대회’ 정도가 될 것이다. 중간에 공백기가 있었지만, 해마다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이 행사는 시발점을 1929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긴 역사를 자랑한다.

행사장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콘셉트카도 볼 수 있지만, 행사장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대부분의 차들은 클래식카다. 만들어진 시기가 짧게는 30년 전, 길게는 약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올해 행사에 나온 50여 대의 차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914년에 제작된 롤스로이스 40/50 H.P. ‘실버 고스트’였다. 콘셉트카를 제외하면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것은 1988년식 포르쉐 959였다.

출품된 차들은 단순히 전시되는데 그치지 않는다. 이 행사의 본질은 경연이고, 차들의 아름다움과 예술성, 가치 등을 기준으로 우열을 가려 가장 훌륭한 차를 뽑는 것이 핵심이다. 매년 그렇듯, 올해 행사에서도 출품된 차들은 시대와 주제를 기준으로 삼은 일종의 체급(클래스)으로 나뉘었다. 클래스마다 출품된 차들을 살펴본 자동차 디자인 분야 전문가와 권위 있는 클래식카 애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과 관람객들은 최고의 차를 가리는 투표를 한다. 다시 그 차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차를 고르는 투표를 통해 최우수 출품차를 선정한다. 최우수 출품차의 소유주에게 행사 공식 후원업체인 BMW 그룹이 제공하는 코파 도로(Coppa d’Oro), 즉 골든 컵이 주어진다.

올해 최우수 출품차로 골든 컵의 주인공이 된 차는 미국인 데이비드 사이도릭이 출품한 1937년형 알파 로메오 8C 2900B. 이 차가 최우수 출품차로 선정된 것은 우아한 디자인과 역사적 가치, 희소성과 뛰어난 보존상태 등 클래식카를 평가하는 거의 모든 기준을 완벽에 가깝게 갖춘 덕분이었다. 차체는 이탈리아의 유명 차체제작업체, 즉 카로체리아(carrozzeria)인 투링(Touring)이 수제작한 것으로,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갓 새로 만들어진 차처럼 보일 만큼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며 관리된 모습에 보는 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흘러나올 만 했다.

이 차는 디자인 뿐 아니라 역사적 가치 면에서도 특별하다. 1937년부터 1940년까지 30대만 생산된 8C 2900B 베를리네타 가운데 다섯 대는 앞뒤 바퀴 간격이 나머지 차들보다 긴 ‘롱 휠베이스’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이번에 수상한 차는 그 롱 휠베이스 모델 가운데서도 첫 번째로 생산된 것이어서 희소성과 가치가 모두 높다. 당대로서는 첨단 기술로 만든 엔진에 힘입어 유명 스포츠카 및 경주차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성능을 냈다. 이처럼 거의 모든 면에서 흠잡을 곳 없이 훌륭한 면모를 지닌 차라면 경연에서 우승을 차지하더라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렇듯 콩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는 관람객에게는 자동차가 줄 수 있는 즐거움과 놀라움을 한껏 느낄 수 있고, 출품차를 소유한 사람에게는 자신이 갖고 있는 차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다. 이런 성격의 행사는 세계 각지에서 수시로 열리며 수많은 애호가들이 자동차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즐기는 자리가 되고 있다.

자동차 애호가들에게는 이런 행사가 프랑스어에서 비롯된 콩쿠르 델레강스(Concours d‘Elegance)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많은 행사가 가장 활발하게 열리고 있는 미국에서도 콩쿠르 델레강스라는 표현을 그대로 쓸 정도다. 콩쿠르 델레강스는 중세 유럽에서 상류층 사람들이 모여 자신이 소유한 마차의 화려함을 비교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시대에 넘어 와서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는데, 그 즈음에 전성기를 맞았던 코치빌더 또는 카로체리아들은 콩쿠르 델레강스를 홍보의 장으로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행사 이름은 대개 행사가 열리는 지역이나 장소 이름이 붙는다. 대표적인 콩쿠르 델레강스로는 앞서 이야기한 이탈리아 빌라 데스테 뿐 아니라 영국의 살롱 프리베, 미국 페블비치와 메도 브룩, 아멜리아 아일랜드 등에서 열리는 것이 유명하다. 특히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는 1950년에 처음 열려, 미국에서 가장 긴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행사로 꼽힌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난해 열린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의 최우수 출품차가 올해 콩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에서 골든 컵을 가져간 바로 그 알파 로메오 8C 2800B였다는 것이다. 소유주인 데이비드 사이도릭은 이렇게 해서 미국과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양대 클래식카 행사에서 모두 최고의 영예를 누리는 주인공이 되었다.

콩쿠르 델레강스에 나오는 차들은 말 그대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진정한 의미의 클래식카들이다. 출품 기준은 엄격하지 않지만, ‘얼마나 원래 상태에 가까운가’라는 기준만큼은 철저하게 따르는 것이 특징이다. 처음 출고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이 최상이다. 복원한 차의 경우에는 원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거나 최대한 가깝게 되살린 것이어야 한다. 이런 기준 때문에 ‘콩쿠르 퀄리티(concours quality)’라는 영어 표현이 있을 정도다.

행사의 성격은 열리는 장소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의 대표적 콩쿠르 델레강스가 열리는 장소는 대부분 유명한 최고급 골프 코스이고, 다른 행사들도 대개 유서 깊은 건축물을 중심으로 하는 호텔이나 리조트 등지에서 열린다. 출품되는 차들이 세계 주요 클래식카 경매에서 적게는 수 억 원, 많게는 수백 억 원의 금액으로 거래되고, 그런 차들을 소유한 사람들은 대개 차를 여러 대 갖고 있는 수집가들이다.

엄청난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수집품을 공개된 자리에 내놓는 만큼, 행사장도 그들의 라이스프타일에 걸맞은 곳으로 정해지는 셈이다. 물론 콩쿠르 델레강스가 부유층 또는 상류층의 사교 모임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단순히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멋진 차들의 경연대회이기는 하지만, 수상은 명예를 상징하는 것일 뿐 입상자들에게 따로 상금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일반 관람객 대상으로 판매하는 입장권 수익은 대부분 자선사업에 쓰인다.

대중과의 소통 기회도 빠지지 않는다.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가 세월이 흐르면서 지역 축제로 발전한 것이 좋은 예다. 페블비치가 있는 지역인 몬테레이에서 ‘몬테레이 카 위크(Monterey Car Week)’라는 이름으로 거의 한 주간 다양한 자동차 관련 행사가 열린다. 이처럼 콩쿠르 델레강스는 미국과 유럽에서 자동차 문화의 중요한 축 중 하나를 이루고 있다. 그 중심에는 오랜 자동차 역사를 바탕으로 클래식카의 가치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문화가 있다. 비록 콩쿠르 델레강스와 같은 화려한 행사가 아니어도, 더 많은 사람이 가치 있는 차들을 실제로 보며 느낄 수 있는 행사를 좀 더 우리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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