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제 스님 “만년토록 빛나는 것 어디서 찾을꼬… ‘참 나’를 바로 보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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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 앞두고 만난 진제 조계종 종정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지난달 29일 부산 해운대구 해운정사에서 “‘참 나’는 가을 하늘과 같이 청정하고 맑고 맑아서, 한 점의 번뇌와 허물이 없다. 자비와 지혜뿐”이라며 참선 수행을 강조했다. 부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지난달 29일 부산 해운대구 해운정사에서 “‘참 나’는 가을 하늘과 같이 청정하고 맑고 맑아서, 한 점의 번뇌와 허물이 없다. 자비와 지혜뿐”이라며 참선 수행을 강조했다. 부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5월 12일)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한국도 세계도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평화와 자비가 넘치는 세계를 차안(此岸)에서는 가질 수 없는 것일까. 한국 불교의 최대 종단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정인 진제 스님을 4월 29일 부산 해운대구 해운정사에서 만났다. 스님은 인터뷰 내내 ‘바른 참선 수행’을 강조했다. 그는 “수행을 하면 마음의 근본 상태, 억만년 전 내 마음의 전체, 우주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전체가 드러난다”며 “거기에는 나도 너도 없고, 죽음도 없다”고 말했다.》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는 무엇인지요.

“부처님은 행복은 물질과 지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몸소 보이기 위해 사바세계에 나타나셨습니다. 중생계는 항시 탐(貪)·진(瞋)·치(癡)와 ‘나’라는 허세와 허욕을 좇아 온갖 번뇌가 그칠 날이 없어요. 부처님은 ‘중생이 이 갖가지 고통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나 쉴 수 있느냐’는 문제를 깊이 생각하시고 ‘모든 고통을 일시에 다 제거할 수 있으니, 참 나를 바로 보라’는 뜻에서 오셨습니다.”

―최근 스리랑카와 뉴질랜드에서 종교 테러로 많은 이가 희생됐습니다.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희생된 분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전합니다. 종교로 인해 사람이 고통 받는 건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지요. 종교마다 극소수의 극단 세력이 지구촌 전체의 문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인은 ‘생명 존중과 인류의 행복’이라는 공통 가치를 구현하도록 협력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세계는 한 집이고, 사람이나 동물, 돌이나 나무까지도 모두 한 몸입니다. 바른 진리를 알지 못하니 그런 비극이 벌어집니다.”

―정치가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점점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정치하는 이들이 국민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과 진영에 매몰돼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릴 것입니다. 상대와 더불어 살아가는 원리를 잊은 것 같습니다. 세계 곳곳의 갈등과 분쟁 모두가 마음이 원인입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의 마음이 불안한데 어떻게 사회가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사회도 갈등이 깊습니다.

“유례없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정신세계는 등한시하고 물질에만 매몰된 금전만능 사회가 됐습니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으로 사람들은 항상 긴장과 갈등을 겪고, 마음의 여유가 조금도 없습니다. 사회가 경쟁과 비교, 분별심으로 가득합니다. 복잡다단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근원인 인간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마음의 갈등을 해소하는 길은 참선 수행밖에 없습니다. 참선을 꾸준히 하면 지혜가 열려 모든 시비와 갈등, 허세, 아집이 봄바람에 눈 녹듯이 없어집니다.”

―육체와 의식, 사회 속 관계를 넘어서는 ‘참 나’라는 게 있습니까.

“중생이 ‘나’라고 생각하는 이 몸은 ‘참 나’가 아닙니다. 몸뚱이는 100년 이내에 썩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이 몸을 부모에게 받기 전 ‘참 나’, 우주가 다 멸해도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참 나’가 있습니다. ‘참 나’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까닭에 중생들은 나고 날 적마다 생로병사의 끝없는 고통의 바다에서 헤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인가’ 하는 화두를 들고 참선해야 합니다.”

―큰스님들이 진리를 두고 하셨다는 대화는 평범한 사람이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진리의 세계는 언어도단처(言語道斷處), 즉 말로 묘사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그러한 세계를 드러내려다 보니 그런 것이지요. 사람들이 이해한다는 것은 알음알이, 분별로 이해한다는 뜻인데, 그러한 분별이 끊어진 세계가 바로 진리의 세계입니다. 참선 수행을 꾸준히 해서 ‘참 나’를 바로 보게 되면 모든 진리가 그 가운데 다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어버리고 참구하다가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나면 억만년 전 자기의 참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러면 모든 성인의 대화 속 진리가 전광석화로 상통이 됩니다. 이해하기 쉬운 말이나 글은 진리의 문으로 안내하는 길잡이지요.”

―보통 사람도 그런 수행을 할 수 있습니까.

“참선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화두를 참구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아주 고요한 마음, 한 생각만 흘러가다가 무르익으면 홀연히 해결이 됩니다. 생활하는 가운데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밥을 먹으나 산책을 하나, 일체 처 일체 시에 챙기고 의심해야 합니다. 누구라도 ‘참 나’를 밝히는 화두참선을 꾸준히 하면 위대한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캄캄한 밤중에 길도 없고 차도 없이 서울 가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라 밝은 지도자를 만나야 합니다. 서울에 도착하지 않은 이는 광대무변한 세계를 모릅니다. 대구쯤 가서 진리의 고향에 이르렀다고 하는 이가 부지기수입니다.”

―종정 재임 중 기억에 남는 일을 꼽는다면….

“2015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30만 사부대중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한 세계 간화선 무차대회’입니다. 한국 불교 1700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법회였습니다. 전국 사부대중이 운집하고 세계의 고승들도 참석해 불교의 저력을 만천하에 드러내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한국 불교의 정통 수행법인 간화선 수행이 한반도의 통일과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바닥만 한 나라를 남북으로 갈라 후손에게 넘기는 것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안타까웠던 일은….

“지난해 일부 지도부의 문제로 종단이 세인의 지탄의 대상이 돼 국민들의 신뢰가 추락한 것입니다. 신뢰 회복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하겠습니다.”

―최근에도 사업 관련 의혹 등 종단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의혹은) 나중에 흑백이 가려지겠지요. 먹물 옷을 입었다고 다 스님이 아닙니다. 출가하더라도 세속의 습기(習氣)는 남아있기에 계율을 엄격히 지키고 내실 있는 수행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참선을 안 하는 이는 껍데기만 중입니다. 부처님 앞에 부복하고 평생을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하여 살겠다고 한 서원대로 수행 정진해 청정 승가를 구현할 때 종단은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불교와 종단에 개혁이 필요한지요.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은 변할 수 없지만 2600년 불교 역사와 1700년 한국 불교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화해 왔습니다. 조계종의 종지가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인 바, 수행이 근본입니다. 승가 교육의 본질인 조사 스님들의 수행 전통을 복원해야 합니다. 편한 것을 찾는 세속의 풍습이 절집에 스며들어 만연하고 있습니다. 각자 직분에서 치열한 정진으로 지혜와 덕을 갖춰야 합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진리의 일구를 선사하겠다”며 종이에 쓴 게송을 건넸다. “만년토록 빛나는 것을 어느 곳에서 찾을꼬(萬古煇然何處覓·만고휘연하처멱)/두두물물이 옛 바람이 드러남이라(頭頭物物現古風·두두물물현고풍).”

부산=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부처님오신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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