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죽지 못한 ‘처녀 귀신’이 좀비와 가장 비슷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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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 속 좀비의 역사
저승 못가고 떠도는 ‘언데드’들… 카리브해 ‘부두교’ 신앙서 유래

귀신, 무속신앙 관련 전통문화 유물들이 전시된 서울 은평구 한국샤머니즘박물관. 한국샤머니즘박물관 제공
귀신, 무속신앙 관련 전통문화 유물들이 전시된 서울 은평구 한국샤머니즘박물관. 한국샤머니즘박물관 제공

“이름 모를 괴질이 서쪽 변방에서 만연해 이 병에 걸리면 심하게 설사를 하고, 궐역(厥逆)이 생겼다. 사망자가 수십만 명이나 됐다.”

김은희 작가(47)가 좀비 사극 드라마 ‘킹덤’을 구상한 배경이라고 밝힌 조선왕조실록의 순조실록(1821년)에 등장하는 한 대목이다. 끔찍한 전염병에 걸렸던 당시 백성들은 실제로 좀비로 변했던 것일까.

답은 당연히 ‘아니요’다. 양종승 한국샤머니즘박물관장은 “당시 유행한 콜레라 등 질병을 표현한 대목으로 우리나라 전통문화 속에 좀비가 등장한 경우는 없었다”며 “좀비는 카리브해 아이티 등지에서 믿는 ‘부두교’의 주술 신앙에 바탕을 둔 것으로, 20세기 중후반에 들어서야 우리나라에 소개됐다”고 말했다.

좀비는 없었지만 저승으로 가지 못한 채 인간 삶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인 일종의 ‘언데드’들은 우리나라 전통 문화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전해진다.

“호조 정랑 이두(李杜)의 집에 죽은 지 10년이나 되는 고모 귀신이 와서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간섭했는데, 허리 위는 보이지 않고 하반신은 종이로 가렸지만 살은 없고 뼈뿐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1486년)에는 이 같은 내용이 나온다. 죽은 고모가 좀비와 같은 모습으로 후손을 괴롭힌다며 임금에게 이를 해결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내용이 공식 기록에 등장한 것. 정사(正史)가 아닌 숱한 신화와 설화 속에서 수배(隨陪·상급 신을 따라 다니는 귀신), 걸립(乞粒·가택신의 사자), 영산(靈山·비명횡사한 남녀의 혼령) 등 각종 귀신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처녀귀신으로 불리는 ‘손각씨’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점이 특징. 서영대 인하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귀신 문화는 사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남존여비 관념이 철저해진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결혼을 하지 못하거나 아들을 낳지 못한 여성이 귀신으로 변한 이야기가 크게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비슷한 가부장 문화를 갖고 있지만, 결혼 제도는 데릴사위제 등이 발달해 처녀 대신 유부녀 귀신이 많은 게 특징이라고 한다.
 
유원모 onemore@donga.com·신규진 기자
#한국샤머니즘박물관#좀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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