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공소남닷컴] 정애연 “진정한 배우 꿈…명품백 대신 소쿠리 들었죠”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8월 2일 05시 45분


드라마, 영화에서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의 역할을 주로 맡아온 배우 정애연은 요즘 연극 ‘사랑해 엄마’에서 홀로 아들을 키우며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엄마로 변신해 연기인생 최고의 열연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제공|조이컬쳐스
드라마, 영화에서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의 역할을 주로 맡아온 배우 정애연은 요즘 연극 ‘사랑해 엄마’에서 홀로 아들을 키우며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엄마로 변신해 연기인생 최고의 열연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제공|조이컬쳐스
■ 연극 ‘사랑해 엄마’서 열연하는 정애연

도시녀 이미지…다른 역 안 시켜줘
캐릭터 변신 위해 연극판 뛰어들어
1년 내내 연극만…벌써 3번째 작품
간만에 ‘의사요한’ 안방 나들이도

정애연이란 배우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드라마, 영화를 통해 인지도와 대중의 인기를 얻은 배우인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연극을 툭 건드렸다가 돌아가곤 했던 것이다. 2006년의 ‘클로저’가 그랬고 2011년 ‘국화꽃향기’와 ‘버자이너 모놀로그’, 2013년 ‘아리랑 랩소디’가 그러했다.

그런 정애연이 작년부터 연극판에서 살고 있다. 벌써 세 작품 째(공연은 네 번째)다. ‘민초’, ‘1950 결혼기념일’과 ‘사랑해 엄마’가 그것으로, ‘사랑해 엄마’는 앙코르 공연 중. 이달 말부터는 대학로 1번출구 연극제 작품인 ‘청춘일발장전’ 출연이 예정되어 있으니 이만하면 연극에 ‘매료’를 넘어 ‘중독’ 수준이 아닌가 싶다. 그의 포털사이트 인물정보를 보면 ‘탤런트’, ‘영화배우’라고만 되어 있는데 여기에 ‘연극배우’를 당연히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젊은 나이에 아이를 낳고,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생선장사를 하면서 아들을 홀로 키워가는 꿋꿋하고 억센 부산 엄마입니다.”

정애연은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앙코르 공연 중인 연극 ‘사랑해 엄마’에서 주인공 ‘엄마(극 중 김복순이란 이름이 딱 한 번 등장한다)’를 개그우먼이자 배우인 조혜련과 번갈아 맡고 있다.

정애연은 “배우는 몸이 악기”라는 말을 몇 번이나 입에 올렸다. 연극에 대한 갈망은 늘 있었다. 연기자 생활을 갓 시작했던 시절부터 대선배님들로부터 “진정한 배우가 되려면 꼭 소극장에서 연극을 해봐야 한다”는 조언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때문이었다.

연기에 대한 욕심이 커질수록 연극에 눈이 갔지만 좀처럼 기회가 닿지 않았다. 정애연은 “연극을 하더라도 쉬었다가 하니까 연기가 느는 것 같지 않더라. 매번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기분이랄까”라고 돌아봤다.

그러던 중 남편 김진근 배우가 지난해 연극에 출연했다. “드디어 타이밍이 왔다” 싶었단다. “이제 나도 마흔을 바라보는 시점이니 배우로서 연기 기량을 좀 더 풍성하게 하고 싶다. 딱 1년만 하겠다”고 시작한 연극이 어느새 정말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배우 정애연. 사진출처|정애연 인스타그램
배우 정애연. 사진출처|정애연 인스타그램

드라마와 영화에서 도시적이고 세련된 역할을 주로 맡아 패션모델처럼 화려한 옷을 입고 명품 백만 들던 정애연은 요즘 생선 소쿠리를 머리에 인 시장 아줌마로 변신했다. 정애연은 재밌고 행복해 죽겠다는 얼굴이다. “그동안 굳어진 이미지 때문에 다른 역할을 안 시켜주시더라. 국한되어 있는 캐릭터 안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연극에) 더 도전하게 된 것 같다.”

정애연은 연극을 하기 전과 1년쯤 연극만 하고 난 지금, 확실히 달라진 걸 느낀다고 했다. 최근 SBS ‘의사요한’ 촬영을 위해 간만에 드라마 나들이를 했는데 “예전이라면 불편했을 주변 상황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더라. 촬영장에서 정작 중요한 게 뭔지 내 스스로 정확히 알고 있었다. 짧지만 행복했다”며 “그런데 연극에서 긴 호흡 연기만 하다가 간만에 ‘커트! 잘라 갈게요’ 하니까 좀 당황스럽더라”며 웃었다.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둔 엄마가 자신의 인생을 짧은 시간에 마치 마임처럼 보여주는 명장면이 있다. 배우들이 ‘마마씬’이라 부르는 이 장면에서 정애연은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에 가려져 있던 배우로서의 원초적 감성과 에너지를 한풀이하듯 쏟아내 무대와 객석을 펑 적셔 버린다.

조혜련이 현실의 엄마를 연기했다면 정애연은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엄마를 보여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역설적으로 아름다운 ‘마마씬’. 아들, 남편의 혼령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는 또 하나의 명장면 ‘밥상씬’을 더없이 애틋하게 보여준 정애연이란 배우가 앞으로도 연극을, 작은 무대를 많이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 그의 연기를 응원하고, 그의 무대를 사랑한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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