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국악 작곡가들의 ‘3분 관현악’ 실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평균연령 33세 10인의 짧고 강렬한 곡
‘국악은 길고 장황’ 선입견 훌훌 털어
24일부터 이틀간 국립극장에서 첫 연주

7월 젊은 국악 작곡가 10명은 별난 작곡 의뢰를 받았다. ‘국악 관현악곡일 것’ ‘3분 내외로 짧은 길이일 것’. 조건은 이렇게 두 가지뿐. 마감시한은 한 달. ‘어떤 경우에도 곡 길이는 5분을 넘어선 안 된다’는 단서가 붙었다.

작곡가들은 당황했다. 보통 국악 관현악이라고 하면 ‘흥’ ‘한’ ‘어우러짐’ 같은 추상적 주제를 10∼30분의 길이로 웅장하게 푸는 것이 예사. 이번엔 악동뮤지션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4분 50초)보다도 짧아야 한다. 앤마리의 ‘2002’(3분 7초) 정도면 오케이.

이렇게 10명의 작곡가가 고심해 만든 국악 관현악곡들이 24, 25일 오후 8시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연주된다. 국립국악관현악단(예술감독 김성진)의 특별 공연인 ‘3분 관현악’에서다.

파격은 곡 길이만이 아니다. 대개 국악 관현악 작곡은 50대 이상의 작곡가에게 위촉하는 것이 보통. 이번엔 10명의 평균연령이 33세다. 최연소는 1996년생으로 23세.

22일 오전 국립극장의 연습실에서는 공연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음악적 주제가 등장하고 60명의 단원이 몇 번 쿵짝쿵짝 하더니 금세 ‘쾅!’ 하고 끝.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곡 하나가 끝났다.

작곡가들은 거두절미, 단도직입의 미학에 몰두했다고 했다. 거문고 협주곡 ‘그 안의 불꽃’을 쓴 김현섭 작곡가(28)는 “3분짜리 국악 관현악곡을 만든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미쳤다’고들 하더라”면서 “하고픈 말을 직격타로 내놓으니 시원하기도 하다”고 했다. 생황 협주곡 ‘신기루와 폐허’를 쓴 장민석 작곡가(24)는 “긴 곡의 경우, ‘긴장-이완’ 구조를 여러 차례 거쳐 정점에 달하지만 3분에는 그런 구조를 한두 번밖에 쓸 수 없다. 하이라이트를 응축해 펼쳐냈다”고 했다. ‘마지막 3분, 무당의 춤’을 작곡한 이고운 작곡가(30)는 “무당의 강렬한 이미지, 딱 하나에만 집중해 곡을 풀어냈다”고 말했다.

생황·거문고·해금 3중 협주곡인 ‘정화’도 특이하다. 3분여의 짧은 곡을 3명이 공동 작곡했다. 관현악, 타악, 협주를 제각각 만든 뒤 합쳐 완성했다. 케이팝의 분업 시스템이 연상될 지경이다.

송현민 프로그램 디렉터(공연 평론가)는 “세 줄 요약, 1분 드라마, 웹툰 같은 스낵 컬처의 시대에 신진 작곡가들에게 그 세대의 감각을 담은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주문했다”고 설명했다.

관객 설문 조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곡은 향후 국립국악관현악단 정식 레퍼토리가 된다. 작곡가들은 “국악을 한번도 제대로 들어본 적 없는 이들이 특히 꼭 들어봐 줬으면 한다”고 했다. 3만∼5만 원.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국악 작곡가#국립극장#관현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