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깊은 바다를 맨몸으로… ‘숨막히는 자유’ 찾는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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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바다, 프리다이버/제임스 네스터 지음·김학영 옮김/380쪽·1만8000원·글항아리

저자는 1년 반 동안 지구 곳곳의 바다 탐험가들을 만났다. 이들은 입을 모아 “바다의 일부가 돼야 한다. 해양 생물에게는 예측 가능한 동작으로 차분하게 다가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항아리 제공
저자는 1년 반 동안 지구 곳곳의 바다 탐험가들을 만났다. 이들은 입을 모아 “바다의 일부가 돼야 한다. 해양 생물에게는 예측 가능한 동작으로 차분하게 다가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항아리 제공
“벌거벗고 태초의 대지 위에 선 듯 자유로워집니다.”

베테랑 낚시꾼은 바다낚시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바다 한가운데서 제 몸집만 한 참치와 드잡이를 하다보면, 태초의 사냥꾼이라도 된 듯 용기가 솟구친다는 것이다. 같은 경험은 없지만 어렴풋이 짐작은 갔다. 갑판에서 사나운 파도와 맞닥뜨리거나 방파제 발밑의 시퍼런 바다를 내려다봤을 때 일렁이는 묘한 희열 같은 게 아닐까.

이 책은 취재를 계기로 프리다이빙의 세계에 발을 들인 저널리스트가 썼다. 황홀하고 무시무시한 프리다이빙과 경이로운 해양 과학 이야기가 교차로 전개된다. 흥미로운 소재 둘을 엮어 술술 읽힌다. 수심 2만8700피트(약 8.75km)까지 수직 낙하하는 이야기는 바다에 대한 동경을 제대로 찌른다.

프리다이빙은 원하는 만큼 깊은 바다에 들어가 숨을 참는 스포츠다. 장비 없이 맨몸으로 들어간다. 10분 가까이 숨을 참으며 수백 m를 잠수하는 비결은 ‘마스터스위치’. 중요한 기관으로 혈액을 보내고, 폐가 쪼그라들고, 심장박동 속도를 늦추고…. 수압에 따라 우리 몸은 알아서 최적화된다. 우리는 바닷물과 성분이 비슷한 양수에서 태어난 바다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임신 8주 차 태아의 턱 부위에는 아가미를 닮은 틈이 있다. … 임신 1개월 차의 인간 배아는 발이 아니라 지느러미가 먼저 발달한다. 신생아를 물에 넣으면 반사적으로 평영으로 헤엄친다.”

바다를 향한 인류의 열망은 멈춘 적이 없다. 수백 년간 커다란 종 모양 단지에 사람을 넣고, 돼지가죽 잠수복을 입고, 유리 양동이를 쓰고 잠수를 시도했다.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물속 탐험의 역사는 더 깊이 내려가고자 했던 사람들의 피와 뼈에 빚진 여정인 셈이다.”

지구에서 가장 깊이 내려간 이들의 무용담은 아름답지만 위태롭다. 사지 마비, 코피 범벅, 블랙아웃은 다반사. 구조 다이버가 항시 대기하지만, 운이 나쁘면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멈출 생각이 없다. ‘심해의 문’을 지나 열리는 초월, 거듭남, 영혼의 정화를 떨칠 수 없어서다.

“고요함이에요. 온몸으로 명상을 하는 기분이요.” “새로운 차원의 경계들을 떠밀면서 물속으로 더 깊이 내려가는 겁니다.” “인간의 한계를 깨고 잠재력을 넓히고 싶어요.”

해양과학자들의 분투로 알려진 바닷속 풍경도 흥미롭다. 수심 700피트(213m)에 이르면 생명체는 사라지고 사방이 탁한 푸른색이다. 수심 2500피트(762m)는 햇빛이 들지 않아 식물이 살 수 없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 전기가오리는 생체전기의 치사 잠재력을 극대화하도록 몸을 진화시켰다.

프리다이버 중 누군가는 탐험을 즐기고 누군가는 숫자에 집착한다. 직접 프리다이빙에 도전한 저자는 ‘프리다이빙 십계명’을 마음에 새긴다. “심해의 문은 슬며시 밀고 들어가야 한다. 혼자 잠수해선 안 되고, 모두가 평화로운 상태로 바다에 들어가야 한다.”

모든 페이지가 살아 펄떡여 책이 아닌 영화를 본 것 같다. “우주에 관한 책으로 ‘코스모스’가 있다면, 바다에 관해서는 이 책이 있다. 황홀하고, 호쾌하며, 영감으로 가득 차 있다”는 해외 평론가의 말에 공감한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깊은 바다 프리다이버#제임스 네스터#프리다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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