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 도서관이라니”…바다냄새 솔향기 책냄새가 뒤섞인 ‘책버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5일 16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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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해변에 ‘책 읽는 버스’가 떴다. 강원 강릉시 연곡해변캠핑장으로 피서를 온 학생들이 4일 소나무 숲 가운데 그네에 앉아 ‘책 읽는 버스’에서 빌린 책을 읽고 있다. 버스 앞에서는 배지 만들기 행사가 열리고 있다. 강릉=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강릉 해변에 ‘책 읽는 버스’가 떴다. 강원 강릉시 연곡해변캠핑장으로 피서를 온 학생들이 4일 소나무 숲 가운데 그네에 앉아 ‘책 읽는 버스’에서 빌린 책을 읽고 있다. 버스 앞에서는 배지 만들기 행사가 열리고 있다. 강릉=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바다냄새, 솔향기, 그리고 책 냄새. 4일 오후 강원 강릉시 연곡해변캠핑장의 소나무 숲에 자리잡은 ‘책 읽는 버스’에는 세 가지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해수욕을 마치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아이들과 부모들이 시원한 버스 안으로 모여들었다.

‘책 읽는 버스’는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운영하고 KB국민은행이 후원하는 이동도서관이다. 대형버스를 개조해 서가와 영상·음향시설, 긴 의자를 설치하고 책 1000여 권과 DVD 100개를 들여놨다. 평소 도서관은 먼 산간 도서 지역의 마을이나 농어촌, 사람들이 모이는 축제 현장을 다니는데 이번에는 휴가철을 맞아 강원도의 캠핑장을 찾은 것.

친구 사이로, 가족들 함께 피서를 온 설유빈 양(서울 월촌초 6)과 서예린 양(서울 가락초 6)이 나란히 버스에 올랐다.

“해변에 도서관이라니! 학교에서는 책을 조용히 봐야 하는데, 여기는 그네에 앉아서 자유롭게 읽을 수 있으니까 더 좋네요.”(설유빈)

“소나무 향기가 나는 곳에서 책을 보니 읽고 싶은 기분이 더 나네요.”(서예린)

‘책 읽는 버스’와 피서객들이 해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곳을 찾다보니, 피서지에서 버스를 만나기를 기다리는 팬도 생겼다. 가족과 함께 캠핑장에 놀러 온 윤호상 군(경기 광명시 철산초 6)은 작년에도 이 캠핑장에서 버스를 만났고, ‘탈무드’를 선물로 받아 가기도 했다. 윤 군은 “올해 또 버스가 기다리는 거 보고 정말 반가웠다”고 말했다. 윤 군의 어머니는 서가에서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지음)을 뽑아들었다. 그는 “이번에도 책 읽는 버스가 캠핑장에 오길 바랐는데 운이 좋았다. 버스에 볼 만한 책이 되게 많다. 일정이 맞아 내년에도 버스와 같은 기간에 여기로 휴가를 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버스가 지난달 26~31일 찾은 강원 속초시 설악동 오토캠핑장에 온 최민아 씨(경기 군포시)도 “작년에는 연곡해변캠핑장에서 책 읽는 버스를 만났는데, 이번에는 여기서 만나서 또 책을 빌리러 왔다”고 했다.

“공부를 할 때!”, “시험을 볼 때!”, “6교시 할 때!”

스토리텔링 행사가 열린 ‘책 읽는 버스’ 내부 모습. 강릉=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스토리텔링 행사가 열린 ‘책 읽는 버스’ 내부 모습. 강릉=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버스 안에 둘러앉은 초등학생 20여 명이 동화 ‘눈물바다’(서현 지음)를 함께 읽은 뒤 “언제 화가 나?”라는 물음에 큰 소리로 외쳤다. 강릉에서 독서치료를 접목한 심리상담소 ‘마음놀이터’를 운영하는 최혜경 씨(52)가 자원봉사자로 나서 같이 책을 읽고 다섯 글자로 자신의 감정에 관해 답하도록 한 것. 아이들은 “게임 졌을 때, 만화 못 볼 때” 슬프다고 했다. 종종 학교에서 독서 수업을 한다는 최 씨는 “학교생활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며 “‘책 읽는 버스’처럼 놀러 와서 느긋하게 책을 보는 자유로움을 학교에서 독서할 때도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럼 아이들은 “언제 행복해?” 질문에 다섯 글자로 뭐라고 답하며 소리쳤을까.

“책을 읽을 때!”, “여행을 갈 때!”, “지금 이 순간!”이었다. 기훈 군(광명 철산초 4)은 “독서 선생님이 특별한 일이 없어도 웃으면 행복해진다고 한 말이 기억에 남았다”고 말했다.

책 읽는 버스는 피서객들이 이름과 전화번호만 적고 책을 빌려가도록 한다. 날마다 50권 정도를 대여한다. 각자 숙소에서 보고, 다음날 오전 반납하면 된다. 종종 “뭘 보고 날 믿고 책을 빌려주느냐”, “내가 책을 안돌려주면 어쩌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독서가들의 인성을 믿는다”는 게 운영진의 말이다. 실제 책 회수율은 ‘99.9% 이상’이라고 한다. 최현진 씨(41)는 김애란 소설가의 ‘바깥은 여름’을 빌려가면서 “휴가 오면서 가족들이 집에서 책을 한권 씩 챙겨왔는데, 안 갖고 와도 될 뻔 했다”고 말했다.

버스에 오른 한 학생은 ‘책버스’로 삼행시를 이렇게 지었다. “책을 읽는 것은/버려지는 시간들을/스스로 구원하는 기회다.”

이날 버스에서는 배지 만들기, 논어와 탈무드 등의 포켓북 배포 행사도 열렸다. ‘책 읽는 버스’는 8일까지 연곡해변캠핑장에 머무르고, 10~12일에는 경남 통영한산대첩 축제 현장을 찾아간다. 책 읽는 버스 방문 신청은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강릉=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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