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동양인 여자는 그리핀시문학상 못 받는다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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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6월 25일 17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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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죽음 다룬 시집으로 ‘아시아 여성 최초’ 수상

김혜순 시인.(문학과지성사 제공)© 뉴스1
김혜순 시인.(문학과지성사 제공)© 뉴스1
“시상식에 참여만 해도 1만달러를 준다고 해서 시집 번역자인 최돈미(57) 시인과 축제를 즐기러 갔죠. 왜냐하면 ‘우리는 동양인이고, 여자니까 절대 상을 못 받는다’고 생각했어요”

올해 그리핀시문학상(Griffin Poetry Prize) 국제 부문을 받은 김혜순(64) 시인은 지난 25일 서울 중구 한 한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리핀시문학상은 2000년 제정된 시 부문 단일문학상으로,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상이다. 매년 캐나다와 인터내셔널 부문 시인을 1명씩 선정해 6만5000캐나다달러(약 5750만원)를 준다.

올해 시상식은 지난 6일(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렸다. 이민자의 도시로 유명한 곳이지만, 시상식장에 온 1000여명의 사람들 중 대부분은 주류라고 불리는 백인들이었다. 그러나 이날 주인공은 아시아인이자 여성인 김 시인과 번역자인 최 시인이었다.

김 시인은 ‘죽음의 자서전’(영문명 Auto biography of death, 번역 최돈미 시인)으로 상을 수상했다. 아시아 여성 최초 수상자인 김 시인은 “수상을 전혀 예상 못했는데, 제 이름이 불려 너무 놀랐다”며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죽음의 자서전’(문학실험실, 2016)은 메르스, 세월호 등 사회적 죽음들을 다룬 시 49편이 담겼다. 시인은 2015년 당시 뇌 신경계 문제를 겪었던 고통의 경험 속에서 시를 써내려갔다.

심사위원 3인 중 대표로 상을 시상한 덴마크 시인 울리카 게르네스(Ulrikka Gernes)는 ‘죽음의 자서전’에 대해 영혼이 우리의 곁을 떠나는 고통스러운 49일간의 여정을 49편의 시에 담아낸 역작이라고 평했다.

김 시인은 “죽은 자가 완전히 죽음에 들기 전 머무르는 시기인 49재를 염두에 두고 시 49편만 실었다”며 “죽은 자의 자서전이 아니라 산자로서 죽음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 자서전이라는 점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번역 시집이다 보니 번역가와의 호흡이 중요할 터. 김 시인은 자연스레 최돈미 시인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최 시인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시인 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김 시인에 따르면 최 시인은 2000년대 초반 김 시인의 시를 번역하고 싶다며 먼저 연락을 해왔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둘은 시에 쓰인 문장에 대해 묻고, 시를 읽고 난 뒤 감정이나 더 나아가 서로의 개인사까지 묻고 답했다. 이런 소통 덕에 한국어 시집에 담긴 의미와 감정을 보다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그리핀시문학상 수상의 영광까지 누렸다.

이날 간담회에 함께 참석한 이광호 문학평론가는 “기존 한국문학은 남성작가의 큰 이야기를 중심으로 외국에 소개됐지만, 보편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었다”며 “김 시인의 이번 수상은 한국여성의 발화가 어떻게 강력한 동시대 보편성을 갖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김 시인은 7월초 신작 산문 ‘여자짐승아시아하기’(문학과지성사)을 출간할 예정이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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