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 미투’ 주도 최영미 “‘성폭력 사건 왜 이제야 말하느냐’ 묻는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5일 16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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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2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영미 시인이 신간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2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영미 시인이 신간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뉴시스
“시 ‘괴물’을 발표한 것은 후회하지 않아요. 오히려 미안했어요. 문단 성폭력 고발을 여고생이 시작했거든요. 내가 너무 늦게 쓴다는 생각을 했어요.”

문단 권력의 성폭력 행태를 폭로한 최영미 시인(58)이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25일 열린 신작 시집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그는 6년 만에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미·1만 원)을 냈다. 최 시인은 “당시 젠더 이슈에 관한 시 세 편을 써달라는 황해문화의 청탁을 받고 ‘괴물’을 쓰게 됐다”며 “후회를 아예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번 시집에서 최 시인은 자신의 안과 밖에서 진행된 변화와 일상을 원숙해진 언어와 강렬한 이미지로 표현했다. 1993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보에 실었던 ‘등단소감’도 눈길을 끈다. 등단 직후 써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은 “내가 정말 여, 여류시인이 되었단 말인가/술만 들면 개가 되는 인간들 앞에서/밥이 되었다, 꽃이 되었다/고, 고급 거시기라도 되었단 말인가”라고 말한다. 등단 후 문단 술자리에서 이뤄지는 무수한 성추행과 성희롱 발언을 겪고 느낀 감정을 솔직히 적어 내려간 시다.
출처 뉴시스
출처 뉴시스

그는 “작년 봄 이후로 ‘왜 그걸(성폭력 사건) 지금 말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제가 침묵했던 것이 아니고 작가로서 표현을 했지만 시집에 넣지 못했을 뿐이다. 오해받고 싶지 않아서 이번 시집에 게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집에는 ‘괴물’을 포함해 ‘미투’ 운동에 관한 시 5편을 수록했다. ‘독이 묻은 종이’에서는 고은 시인과 벌이고 있는 재판을 언급한다. “직접적인 표현이지 문학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는 질문에 그는 “직접적으로 느꼈다면 나에 대한 칭찬”이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문학성은 잘 몰라요. 주제가 주어지면 그에 관해 쓸 뿐이에요. 사람들이 제 언어를 ‘직구’라고 느끼지만 저는 변화구도 써요. 다만 훌륭한 투수는 변화구도 직구처럼 넣잖아요? 고립무원으로 살았지만, 저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지금까지 저를 이끌어 준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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