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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60만권으로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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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60만권으로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영웅’

김화성전문기자 입력 2014-11-29 03:00수정 2014-11-3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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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앨리스테어 혼 지음·한은경 옮김/264쪽·1만3000원·을유문화사
하루 18시간 동안 한가지에 몰입… 전쟁 중에도 파리 도시계획 지시
문화지도자로서 나폴레옹에 초점… 당대의 역사 쉽게 이해할 수 있어
19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대표적 화가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작품 ‘황제의 권좌에 앉은 나폴레옹’(1806년). 나폴레옹의 지시를 받아 그린 이 그림은 당대의 살아있는 인물을 시공을 초월한 존재처럼 보이도록 했다. 하지만 나폴레옹을 지나치게 신격화한 이 그림은 평단의 혹평을 받았다. 을유문화사 제공
나폴레옹(1769∼1821)은 ‘에너지 인간’이었다. 그의 에너지는 철철 차고 넘쳐 거의 초인적이었다. 그는 하루 18시간 동안 하나의 생각과 행동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그의 직관력, 권력에 대한 불굴의 의지, 광적인 집중력은 지칠 줄 몰랐다. 전쟁의 신, 군사 천재는 기본이었다. 혁명가였고, 독재자였고, 도시계획가였고, 과학자였고, 노련한 심리학자였다.

나폴레옹은 ‘파리 대왕’이었다. 1798년 그는 ‘파리를 과거나 미래를 통틀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나폴레옹은 권력을 잡은 14년여 동안 5년 정도 파리에 없었다. 전쟁터를 누비느라 비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단 한 번도 파리를 떠난 적이 없었다.

그는 편지, 명령, 칙령초안, 쪽지 등을 통해 파리의 부하들에게 끊임없이 지시하고 참견했다. 그가 보내는 우편물 분량은 엄청나서 허리가 휘청할 정도였다. 1806년 폴란드에서는 ‘파리에 증권거래소를 세우라’고 편지를 보냈다. 전투 준비 중이던 동프로이센에선 ‘파리에 왜 조명이 없느냐’며 펄펄 뛰었다. 파리에서 1600km나 떨어진 틸지트에선 ‘파리의 분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거나 ‘왜 우르크 운하가 완공되지 않았느냐’며 난리법석을 떨기도 했다.

그렇게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이 만들어졌고, 개선문이 세워졌다. 96km 길이의 운하를 뚫어 우르크 강에서 신선한 물도 끌어왔다. 정복지에서 약탈해 온 예술작품을 모아두기 위해 보물창고도 새로 지었다. 바로 1803년 완공된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한마디로 나폴레옹시대 내내 파리는 대규모 건축현장이나 다를 바 없었다. 오늘날 파리의 큰 틀은 그의 시대에 대부분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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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폴레옹시대의 문화예술과 생활 스케치다. 전쟁 이야기는 미미하다. 나폴레옹은 ‘민법전(나폴레옹법전)’을 만들어 프랑스 사회에 평등 개념을 굳건히 했다. 그의 육군 원수 26명 중에서 단 2명만이 귀족 출신일 정도였다. 나머지는 여관집 아들, 술집 아들, 고아, 잡역부 출신이었다. 나폴레옹은 철저한 행동주의자였다. 수학과 과학을 지지했고, 문학 연극 오페라 같은 것들엔 시큰둥했다. ‘평등’은 허용해도 ‘자유’는 인정하지 않았다. 자기연민이니 자기반성이니 하는 것들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그에겐 ‘상상의 공포’가 없었다.

나폴레옹에게 ‘셰익스피어는 쓰레기’였다. 연극 ‘햄릿’은 많은 부분이 삭제된 후 파리 공연이 허용됐다. 식사와 섹스는 15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섹스는 ‘땀의 교환’일 뿐이며 ‘여성의 역할은 침대와 가족, 교회에 한정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나폴레옹은 ‘수수께끼 같은 영웅’이다. 지금까지 나온 그에 관한 책이 무려 60만 권이 넘는다. 1804년 서른다섯의 나폴레옹은 노트르담 성당에서 황제 자리에 올랐다. 교황의 손이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직접 황제의 관을 썼다. 나폴레옹은 그런 사람이었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나폴레옹#나폴레옹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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