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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조선선비 꿈 담은 지상천국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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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조선선비 꿈 담은 지상천국의 정원

동아일보입력 2014-05-10 03:00수정 2014-05-1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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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거닐다, 소쇄원/이기동 지음·송창근 사진/244쪽·1만4000원·사람의무늬
담양 소쇄원의 내력과 풍광
조선시대 정원문화의 꽃으로 불리는 전남 담양 소쇄원의 광풍각. 소쇄원을 찾은 손님을 위한 공간으로 주인의 공간인 제월당과 두 개의 낮은 담으로 연결된다. 송창근 제공
한세상 살기 참 힘들다. 백성은 백성대로, 선비는 선비대로 죽을 맛이다. 사방에서 도리바리 울음소리. 조선 백성들은 목숨 부지가 으뜸이었다. 저마다 전란, 흉년, 질병 3재(三災)가 없는 땅으로 숨어들었다. 양백지간(兩白之間), 이른바 소백산이나 태백산 틈새 어디쯤, ‘십승지(十勝地)’를 찾아 떠났다.

조선 선비들은 ‘군자의 나라’를 꿈꿨다. 그것은 ‘자기를 완성하고, 타인을 완성시켜,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내성외왕(內聖外王). 내적으로 성인이 된 사람이, 외적으로 왕이 되어 백성을 이끄는 것이다.

1543년 하서 김인후(1510∼1560)는 훗날 인종이 될 세자(1515∼1545)의 스승이 됐다. 꿈을 실현할 천재일우였다. 혼신을 다해 가르쳤고, 세자는 한지 물 빨아들이듯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를 ‘씹고 무고하는’ 소인들 등쌀에 견딜 수가 없었다. 인종도 재위 9개월 만에 눈을 감았다. 김인후는 미련 없이 벼슬을 던지고 고향 장성에 내려왔다.

소쇄옹 양산보(1503∼1557)는 정암 조광조(1482∼1519)의 제자였다. 기묘사화로 스승이 능주로 귀양을 가자 그곳까지 따라갔다. 그리고 스승이 사약을 받고 눈을 감자 고향 담양에 파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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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후와 양산보는 뜻이 맞았다. 장성과 담양은 지척. 김인후는 양산보의 둘째 아들 양자징(1523∼1594)을 제자로 받고, 급기야 사위로 삼았다.

양산보는 12년에 걸쳐 ‘소박하고 아담한 정원’을 만들었다. 바로 맑을 소(瀟), 깨끗할 쇄(灑), 동산 원(園)의 소쇄원이었다. 다 해봐야 4628m²(약 1400평)나 될까. 그곳에 조선 선비의 꿈을 고스란히 담았다. 김인후가 그 풍광을 48수 오언절구(48영)로 읊었다. 양산보의 외종형 면앙정 송순(1493∼1583)도 어울렸다. ‘10년을 경영하여 초당 삼 칸 지어내니/한 칸은 청풍이요 한 칸은 명월이라…’의 그 송순이다.

저자 이기동 교수(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는 소쇄원을 조선 선비의 ‘지상천국’으로 보았다. 그리고 천국의 문 ‘대숲’부터 그 속뜻을 감칠맛 나게 풀었다. 봉황을 기다리는 ‘대봉대(待鳳臺)’, 볕이 잘 드는 애양단(愛陽檀), 차안과 피안의 건널목 오곡문(五曲門) 그리고 마침내 천국이다. 그 다음부터는 김인후의 ‘48영’을 중심으로 펼친다.

제월당(霽月堂)과 광풍각(光風閣)이 두 축이다. 제월당은 주인, 광풍각엔 손님이 묵는다. 두 집 사이엔 두 개의 낮은 담이 있다. 서로 통해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때가 되면 주인은 그 담장과 담장 사이에 음식상을 은근슬쩍 갖다놓는다. 기가 막힌 ‘천국식 배려’다.

김인후의 ‘48영’은 씹을수록 맛있다. ‘계곡에 펼쳐진 하얀 베 한 폭(흐르는 물)’ ‘구름 찧는 물레방아’ ‘널찍한 돌 돗자리’ ‘평상바위 바둑 두기’ ‘긴 담장에 걸린 맑은 시편’….

그래도 흠은 있다. 사진과 글이 엇박자다. 글은 창포인데, 사진은 노랑꽃창포다. 두 꽃은 완전 다르다. 사계화 글에 동백꽃 사진도 마찬가지. 오랑캐꽃이라는 말도 거슬린다. 제비꽃이란 예쁜 이름이 있는데. 천국에 영 안 어울린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천국을 거닐다#소쇄원#양산보#김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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