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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호·모·쿠·킹·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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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호·모·쿠·킹·쿠·스

동아일보입력 2014-03-01 03:00수정 2014-03-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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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욕망하다/마이클 폴란 지음·김현정 옮김/560쪽·2만8000원·에코리브르
에코리브르 제공 ⓒFotolia.com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지난해 유행어라면 뭐가 있을까. 다양한 의견이 나오겠지만, 채널A 프로그램 ‘먹거리 X파일’을 진행하는 이영돈 PD의 한마디도 꽤나 회자됐다. 아울러 방송이 선정한 ‘착한 식당’은 방송 때마다 포털사이트 검색어에 오르곤 했다. 개인적으로 착한 떡집에 혹해 전화를 걸었다가 몇 개월 뒤까지 주문이 찼다는 답에 절망했던 적도 있다.

어쩌면 이는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먹거리에 관심이 큰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일 뿐이다. TV 채널마다 근사한 맛집과 음식을 다루는 정보물을 틀지 않는 데가 없다. 심지어 요리 대결 서바이벌에 ‘먹방’이란 신조어도 자연스러워졌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이토록 열망이 큰 풍조와는 어울리지 않게 직접 요리에 들이는 노력은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 책에 따르면 미국 가정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은 1960년대보다 절반 이상 줄어서 하루 평균 27분밖에 되질 않는다.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주위를 둘러봐도 즉석식품이나 배달요리에 대한 의존도는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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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인 저자는 줄기차게 음식문화를 다룬 책을 써온 인물. 특히 2008년 동아일보 올해의 책 10에 선정되기도 했던 ‘잡식동물의 딜레마’(다른세상)는 큰 화제를 모았다. 잡식성인 인간은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안전한 식탁을 마련했다고 믿었으나, 그 뒤에 가려진 ‘음식사슬’의 구조적 폐해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그런 저자가 이번엔 직접 요리에 뛰어들었다. 현대사회가 지닌 ‘요리의 역설(cooking paradox)’ 기저에 깔린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요리 자체에선 멀어지면서 착한 음식에 대한 갈구는 커져가는 현실 속에서, 몸으로 요리를 겪어가며 그 본질을 탐구하려는 욕심이었다.

책에선 인류의 요리법을 4가지 요소로 구분한다. 고기나 생선을 굽는 ‘불’과 무언가를 담아 끓이거나 조리는 ‘물’, 서양인의 주식인 빵을 만드는 데 핵심인 ‘공기’, 그리고 저자가 차가운 불이라고 부르는 발효를 다룬 ‘흙’이다. 고대 서양에서 만물을 구성하는 4원소라고 믿었던 요소를 요리에 접목한 것이다. 저자는 1년 넘게 공들인 취재와 체험을 사회문화사에 비춰가며 쫄깃쫄깃하게 버무려놓는다.

예를 들어, 불은 인류가 가장 먼저 발견한 요리법이자 인간을 동물과 구분 짓는 결정적 계기였다. 날것을 먹느라 소비하는 생체에너지와 시간을 줄여 문명의 발전에 투입할 여력을 얻었다. 또한 야외에서 함께 고기를 굽는 문화는 인류가 신께 제물을 바친 뒤 이를 나눠먹는 종교적 의례가 기원이다. 동물을 구워 그 영혼(연기)은 하늘에 바치고, 신이 허락한 잔해를 먹는다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불은 인간이 신과 자연 가운데 위치하도록(맘껏 동물을 잡아먹을 수 있도록) 철학적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면죄부가 됐다.

저자는 더 나아가 통돼지 바비큐 전문가를 찾아 직접 요리 현장을 겪어본다. 바비큐는 미국에서 남부 흑인문화의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전통 요리로 대접받는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가 먹는 고기는 대부분 잔인한 대량사육의 결과물이며, 숯이나 소스는 더이상 복합화학성분이 빠지지 않는다. 물론 최근 이에 대한 대안으로 ‘옛 방식’을 찾는 이가 늘고 있지만, 이는 비용과 시간이 갑절 이상 든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여전히 우리를 옭아매고 있다.

다소 냉소적으로 흘렀지만, 사실 이 책은 그 절망의 한계를 뛰어넘는 희망을 요리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흙, 발효는 저자가 가장 깊이 끌린 요리법이다. 여러 난관이 있지만 인간은 직접 요리하는 ‘문화적 창조’를 통해 오감을 깨우고 자연이나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을 배운다고 자신했다.

“(요리를 다루는 사람들은) 자신이 자연과 생생한 대화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일들은 발효에 참여한 살아있는 생물들과의 작업이다. … 우리가 성공을 거두려면 그러한 관계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특히 저자는 발효음식의 세계적 대표주자 ‘김치’에서 큰 감명을 받는다. 김치를 알려고 한국까지 찾아오는데, 이연희라는 분에게 김장을 배우며 요리가 지닌 본질을 깨닫는다. 이 씨는 “맥도널드 햄버거도 입맛은 있다. 하지만 한국인에겐 손맛이 더 중요하다”고 일러준다. 손맛이 뭔지 몰라 당황하던 저자는 자신의 체험을 되짚어가며 그 깊은 의미를 알아차린다. 음식에 들어가는 정성과 생각, 개성이 한데 버무려진 맛. 요리는 인간을 북돋우는 치료제였던 것이다.

거대산업과 현대문명에 휩쓸려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고민하는 이들이여. 얼른 주방에 들어가 요리하라. 인간은 호모 ‘요리’쿠스였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요리를 욕망하다#먹거리#음식문화#요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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