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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진보와 구원? 잊어라, 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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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진보와 구원? 잊어라, 환상이다

동아일보입력 2014-03-01 03:00수정 2014-03-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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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침묵/존 그레이 지음·김승진 옮김/272쪽·1만6000원·이후
유토피아적 꿈에 사로잡힌 신자유주의자를 향한 외침

이 책의 저자 존 그레이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저자(미국 작가)와 동명이인이다. 영국의 정치사상가 존 그레이(66·사진)다.

책을 펼치기 전 이 정도만 알고 있어도, 당신은 현대 정치사상에 상당한 식견을 갖춘 것이다. 하지만 그 존 그레이가 여러 얼굴을 지녔다는 점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내에선 그가 주로 현대 영국을 대표하는 자유주의 이론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저서 ‘자유주의’(Liberalism)가 2000년대 초중반 두 개 출판사에서 번역되고 인용되면서 좌파이론가들에 맞서 싸우는 전투적 자유주의자로 소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쓴 1986년 초판 ‘자유주의’와 1995년 개정판 ‘자유주의’ 사이엔 간극이 존재한다. 초판에서 자유주의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았던 저자가 개정판에서 자유주의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며 탈자유주의자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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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선 이런 그를 ‘후기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범자유주의’에 묶어 두려 했다. 하지만 그는 1998년 펴낸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환상’에서 신자유주의를 맹비판하면서 반자유주의자로 돌아선 지 오래였다. 이후 국내에 번역된 ‘호모 라피엔스’(2002), ‘추악한 동맹’(2007)과 ‘불멸화위원회’(2011)에선 마르크시즘과 나치즘 같은 전체주의는 물론이고 자유주의와 그 변종인 신자유주의 모두를 배태한 계몽주의와 인간주의(휴머니즘)에 대한 맹비판을 펼친다.

그가 지난해 발표한 ‘동물들의 침묵’은 반인간주의를 선언한 ‘호모 라피엔스’(약탈하는 인간)의 연장선상에 있다. 진보와 구원을 믿은 유토피아적 환상에 사로잡힌 인간이 현실을 악몽으로 둔갑시킨다는 사상을 다양한 텍스트 속에서 길어 올린다.

1장에서는 조지 콘래드의 ‘진보의 전초기지’(1896),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1940), 쿠르초 말라파르테의 ‘가죽’(1949), 유진 라이언스의 ‘유토피아 통신’(1938) 같은 글을 통해 문명과 야만의 경계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폭로한다. 2장에선 집단무의식이란 ‘신화’를 추구한 융의 도전에 맞서 모순적 인간에 대한 ‘과학’을 지키려 한 프로이트와 ‘의미의 폐허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려 한’ 묵시론적 소설가 J G 발라드에게서 진보와 구원이란 환상에 맞서 싸우는 영웅의 면모를 찾는다. 3장에선 10년간 송골매를 관찰한 J A 베이커의 관찰기를 인용하면서 동물의 침묵과 관조를 추구할 때 부질없는 환상으로 소란스러운 인간 내면의 소용돌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역설한다.

자유주의자에서 노장철학에 경도된 반문명주의자로 변신한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근대 자유주의 사상가들이 노자의 ‘무위’(無爲)에서 자유의 영감을 얻었다는 주장에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문학사에서 비교적 덜 알려진 작가들을 동원하며 수다스럽게 도달한 결론을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간명한 문장으로 끌어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레이의 사상적 스승은 러시아계 유대인 출신의 영국 자유주의 사상가 이사야 벌린(1909∼1997)이다. 벌린은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일원주의적 고슴도치를 비판하고 회의주의와 자유주의로 무장한 다원주의적 여우를 찬미했다. 그레이는 철두철미한 여우의 길을 추구하다가 급기야 인간의 탈을 벗고 여우가 되기를 꿈꾸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레이는 스승이 자유를 꿈꾼 궁극의 이유가 ‘윤리’에 있음을 망각했다. 윤리야말로 철저히 인간적인 것이다. 그래서 “새들의 삶은 우리의 심장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박동으로 빨라지고 덥혀진다. 새들은 망각으로 질주한다”는 베이커의 글귀는 그레이의 윤리 망각에 대한 비판으로 되읽힐 수 있다. 그에게 스승과 같은 프랑스 철학가로, “윤리학이 제1철학이 돼야 한다”고 역설한 에마뉘엘 레비나스(1906∼1995)를 읽기를 권한다. 레비나스야말로 윤리적 존재로서 인간에게 관조적 삶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아하게 입증했기 때문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존 그레이#동물들의 침묵#신자유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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