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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탑골공원엔 조용한 사색파, 종묘공원엔 리버럴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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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탑골공원엔 조용한 사색파, 종묘공원엔 리버럴이 많아”

동아일보입력 2014-02-15 03:00수정 2014-02-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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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군집공간 탐사 ‘퇴적공간’ 펴낸 오근재 前 교수
‘퇴적공간’의 저자 오근재 전 홍익대 교수가 서울 종묘공원을 찾았다. 그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잃은 노인은 육체적 노화보다 사회적 노화를 먼저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보면 집안의 기둥과 같던 주인공이 벌레로 변한 뒤 가족들이 숨기고 싶은 존재, 쓰임과 존재감을 잃은 존재로 전락하잖아요. 제가 교수 직함을 내놓고 ‘노인’이 되고 보니, 노인이 꼭 그런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이 책을 쓰려고 마음 먹었죠.”

‘왜 노인들은 그곳에 갇혔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퇴적공간’(민음인)은 서울의 대표적 노인 군집공간에 대한 탐사 기록이다. 오근재 전 홍익대 미대 교수(73)는 2006년 정년퇴임한 뒤 지난 2012년 약 4개월간 탑골공원과 종묘시민공원처럼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이 모인 공간을 찾아가 노인들과 어울리고 또 관찰했다. 이때의 단상을 모아 엮은 게 바로 이 책이다. 그런데 왜 제목을 퇴적공간이라 지었을까?

“노인들은 젊어서 자신의 행동과 감정, 아이디어까지 화폐로 교환 가능한 모든 것을 내다팔고 이제는 팔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이에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환 가치를 잃은 잉여인간, 쓰레기 취급을 받는 이들이 떠밀리고 떠밀리다 강 하류 모래섬처럼 쌓인 공간이 종묘공원, 탑골공원 같은 곳이죠.”

그는 노인들을 퇴적공간으로 이끄는 동인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나만 멸시받고 쓸모없는 게 아니었구나’ ‘저들도 나 같구나’ 하는 확인을 받고 싶은 게 가장 큰 이유죠. 하지만 이곳의 ‘거주자’로 여겨지고 싶지 않아서 말로는 ‘어쩌다 한번 와 봤다’고들 해요. 스스로를 이곳의 거주자가 아닌 방문자로 여기는 사람으로만 수천 명씩 군집이 이뤄진다는 사실이 참 역설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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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퇴적공간이라도 느껴지는 미세한 결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 그는 사람의 차이를 지적했다. “탑골공원은 조용하고 사색을 즐기는 노인이 많아요. 서예나 댄스 등을 가르쳐주는 노인복지센터는 아무래도 순응적인 분들이 다수죠. 주변에 상점도 많고 시국강연회도 열리는 종묘공원 노인들이 가장 ‘리버럴’하달까요.”

저자는 원래 미대에서 디자인을 연구했다. 책 속에도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끌어와 종묘공원의 성격을 조명하거나 육체의 노화를 고대 그리스 조각상에 빗대 설명하는 등 인문학적 상상력에 미학적 관점을 녹여 노인문제를 다루려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렇다고 이 책이 철학적 사색과 관찰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다. 노인을 상대로 성매매를 한다고 알려진 이른바 ‘박카스 아줌마’들과 어울려 술을 마셔보기도 하고, 그 속내를 들어보려고 일부러 돈을 뜯겨 보기도 했다. “성매매가 만연해 있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어요. ‘아줌마’라지만 이들도 상당수가 60대 초중반 노인으로 남자에게 커피 한잔, 소주 한잔 마시자고 떠보며 푼돈을 챙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는 노인이나 복지정책을 입안·집행하는 이들이 이 책을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금은 노인을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이들도 필연적으로 곧 버려질 처지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해요. 그렇게 되면 노인을 불편하고 귀찮은 존재가 아닌 온기가 도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고 정책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퇴적공간#오근재#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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