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고아 야생동물과 인간의 아름다운 교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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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칸 러브 스토리/대프니 셀드릭 지음·오숙은 옮김/512쪽·1만5800원·문학동네
소설보다 흥미진진한 회고록

저자 대프니 셸드릭과 아프리카 코끼리 ‘올멕’이 1989년 함께 찍은 사진. 1987년 케냐 마랄랄 국립공원에서 구조된 올멕은 당시 생후 1개월이었는데 일광화상까지 입고 극도로 쇠약해진 상태였다. 그러나 데이비드 셸드릭 야생동물 트러스트의 보호를 받고 건강을 되찾은 뒤 야생으로 돌아갔다. 문학동네 제공
저자 대프니 셸드릭과 아프리카 코끼리 ‘올멕’이 1989년 함께 찍은 사진. 1987년 케냐 마랄랄 국립공원에서 구조된 올멕은 당시 생후 1개월이었는데 일광화상까지 입고 극도로 쇠약해진 상태였다. 그러나 데이비드 셸드릭 야생동물 트러스트의 보호를 받고 건강을 되찾은 뒤 야생으로 돌아갔다. 문학동네 제공
어쩌면 다른 뭔가를 볼 틈이 없는지도 모른다. 1820년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보다 윗대쯤 되는 선조는 영국인이었으나 남아프리카에 정착했다. 이후 케냐를 지배하고픈 영국 정부 시책에 혹해 중앙 동부아프리카로 떠난 그들은, 갖은 고생 끝에 농장을 운영하는 ‘하얀 부족’(흑인 원주민은 백인 이주민들을 이렇게 불렀다)으로 자리 잡았다. 거기서 태어나고 자라 자식과 손자를 키운 여인. 대자연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었다. 대프니 셸드릭, 그는 아프리카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1934년생으로 올해 팔순인 저자에게 어린 시절 케냐는 신나는 모험과 즐거움이 가득한 곳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급자족에 가까운 노동에 벌이가 시원찮아 시름이 깊었다. 허나 물정 모르는 아이가 가족 생계를 고민했겠나. 농작물을 초토화시키는 메뚜기 떼가 휩쓸고 지나가면 그 뒤에 남은 메뚜기볶음 먹을 일에 신이 났다. 행여 짐승이 맞으면 생명까지 앗아가는 우박이 내려도 얼른 모아다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다. 그에겐 가축도 초식동물도 심지어 맹수도 함께 뛰노는 친구였다.

그리도 애정이 넘쳤던 탓일까. 열다섯 살에 20대 빌 우들리란 나이로비국립공원 관리원과 첫사랑에 빠져 곧장 결혼을 선언했다. 물론 부모들이야 반길 리가 없었다. 어르고 달래도 듣지 않자 약혼부터 시켰으나, 19세가 되자마자 홀랑 식을 올려 버렸다. 그러고 이듬해 큰딸을 출산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동화라면 그랬겠지만 현실은 달랐다. 2, 3년도 안돼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성급했는지 깨달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대프니의 심장이 딴 데서 콩닥대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스무 살 가까이 위인 이혼남 데이비드 셸드릭. 게다가 남편의 직장상사였다. 그런데도 빌이 출장 중일 때 그의 품에 안겨 춤이라도 추면 정신이 아득해지고…. 이거 뭐, 자유부인이야 뭐야.

운(?)이 좋았던 걸까. 마음이 떠난 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합의이혼을 거쳐 잘 헤어졌다. 그리고 서양인답게 평생 좋은 친구로 지냈다. 대프니의 성이 셸드릭인 것에서 짐작했겠지만, 데이비드와 재혼했다. 이후 차보국립공원의 초대소장이 된 남편과 함께 그는 아프리카 동물보호에 온몸을 투신하기 시작한다.

솔직히 이 책은 살짝 당황스러웠다. 표지 소개 글을 봤을 땐 ‘침팬지의 어머니’ 동물학자 제인 구달의 또 다른 버전을 상상했는데, 정말 제목 그대로 사랑 이야기였다. 나이팅게일 위인전인 줄 알고 펼쳤는데 스칼릿 오하라(‘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를 맞닥뜨린 기분이랄까. 그런데 어어 하다가 뒷장이 궁금해 손에서 책을 놓질 못한다.

신상에 초점을 맞춰 소개했으나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저자의 또 다른 사랑, 자연과 동물이 가벼운 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야생동물과 친숙했던 그는 밀렵으로 고아가 된 동물(주로 코끼리)을 양육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일에 주력했다. 특히 남편이 50대에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이름을 딴 ‘데이비드 셸드릭 야생동물 트러스트’를 세워 평생 헌신한 공로는 엄청나다. 이를 인정받아 영국 왕실로부터 남성의 기사(knight)에 해당하는 데임(dame) 작위를 받았다.

광활한 아프리카에서 워낙 경험이 풍부했기 때문일까. 책은 뻔한 회고록을 뛰어넘어 웬만한 문학작품보다 흥미진진하다. 게다가 저자의 나이를 보면 알겠지만, 제2차 세계대전과 케냐 독립운동 같은 시대적 회오리도 상당해 대하역사소설을 읽은 감흥이 밀려든다. 케냐판 ‘토지’라 하면 너무 극찬이긴 한데…. 어쨌든 동물이나 아프리카, 역사 어느 방면에 관심 있는 독자라도 만족할 만하다. 역시 사랑 얘기는 세대와 국경을 초월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아프리칸 러브 스토리#대프니 셸드릭#동물보호#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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