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달걀 꺼낼 때 닭장문 노크… 농부의 그마음 아십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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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걀 배달하는 농부/김계수 지음/288쪽·1만3800원/나무를 심는 사람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학교에서 13년간 아이들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2001년 가족과 함께 고향인 전남 순천으로 낙향했다. 친환경 생육법으로 닭을 치고 그 닭이 낳은 유정란을 일주일에 두 번 소비자의 집으로 배달하는 양계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하기를 무려 11년. 선생님에서 양계업자이자 농부로 변신한 저자가 농사와 생명, 일에 대해 적은 단상을 엮은 책이다.

닭이 놀랄까 봐 달걀을 수거하러 산란장 문을 열기 전 노크를 하고, 제초제를 쓰지 않으려고 해충을 일일이 손으로 잡는 이 원칙주의자 농부가 세상을 보는 통찰력은 책 곳곳에서 빛난다. 아둔한 이들을 ‘닭대가리’라고 부르는 것부터 생각해 보자. 저자는 꾀를 부리지 않고도 자기 목숨을 부지하고 자손을 번식시키며, 인간에게 유익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모자라 똥오줌으로 땅을 기름지게 만드는 닭만 한 미덕을 갖춘 사람이 어디 흔하냐고 되묻는다. 먹이를 서로 차지하려고 몰려다니는 병아리의 모습에서는 어설픈 지식과 권력을 남들에게 못 드러내 안달하는 미숙한 인간의 모습을 읽어 낸다.

이제 그리 새로울 것 없는 귀농인의 친환경 영농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매력은 친환경 농업의 이상과 현실, 원칙과 각론 사이에서 갈등하는 저자의 인간적인 모습에서 찾을 수 있지 싶다. 닭에게 생태친화적 사육 환경을 만들어 줘도 유전자 조작 농산물로 만든 수입 사료를 먹여야 하는 현실에서 오는 자괴감, 농장 유지하려고 연간 수천 L의 기름을 때고 막대한 전기를 소비하는 현실과 가축이 내뿜는 온실가스를 떠올리며 느끼는 자책감이 그렇다. 한 술 더 떠 “(내 영농 방식은) 자연에 무해한 방식이 아니라 조금 덜 해로운 방식”이라고 토로하는 저자에게 당장이라도 달걀을 주문하고픈 마음이 든다.

전 지구적 생태 위기 앞에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감수성의 혁명을 제안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환경을 망치는 타인에 대한 분노나 내가 남보다 생태적으로 건전하게 산다는 자긍심이 아니라고. 진정 필요한 것은 내가 남긴 크고 작은 찌꺼기들에 대한 죄책감, 자연에 대해 느끼는 미안한 마음이라고.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나는 달걀 배달하는 농부#생명#일#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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