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금융은 과연 나쁜가?… 실러, 따뜻한 금융을 말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새로운 금융시대/로버트 실러 지음·노지양 조윤정 옮김/456쪽·1만7000원/알에치코리아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세 사람 중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사람은 행동경제학의 대부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다. 그의 책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은 2009년 2월 출간 즉시 세계 경제학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그해 6월 국내에서도 번역 출판돼 지금까지 7쇄 3만3000부가 팔렸다.

실러 교수는 자산가격 거품에 대한 이론을 펼치며 2000년 닷컴 버블 붕괴와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차례로 예언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같은 위기를 촉발한 주범으로 ‘금융업계의 탐욕과 무책임’이 지목됐고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까지 나왔다. 금융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실러 교수가 “금융이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주장을 담은 책을 내놓았다.

금융은 원래부터 부도덕한 것인가? 좋은 사회 건설의 걸림돌일까? 이 질문에 대해 실러 교수는 ‘노’라고 답한다. 그는 영국의 산업혁명이 금융의 역할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며, 미국의 서부 개척도 금융의 공로가 컸고, 최근 정보화 시대를 앞당길 수 있었던 것 역시 금융이 시장 리스크를 충분히 흡수해줬기 때문임을 호소력 있게 논증한다.

2008년 금융위기의 직접적 원인인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역시 자산유동화를 통해 대출금을 조기에 회수함으로써 더 많은 주택 구입자에게 대출 혜택을 주려고 만들어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집값 상승에 대한 잘못된 예측과 부풀려진 신용평가의 문제이지 모기지라는 금융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저자는 앞으로도 금융이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금융의 민주화’를 이야기한다. 인간 심리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그 시스템에 반영되는 ‘인간적 금융’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사례로 마이크로크레디트를 활용한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을 든다. 또 금융공학의 알고리즘을 신장이식 환자와 기증자 연결에 적용해 그 성사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인 앨빈 로스 하버드대 교수의 사례도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상생 나눔 배려의 가치를 필요로 한다. 금융을 사회적 가치를 증진하는 수단으로 재인식하고 금융 시스템의 변화와 개선을 모색할 때 우리는 금융의 피해자나 배척자가 아니라 주인이 될 수 있다. 금융 전문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특히 일독을 권한다. 원제 ‘Finance and the Good Society’(2012년).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새로운 금융시대#로버트 실러#금융의 민주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