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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현대인과 174명의 ‘에너지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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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현대인과 174명의 ‘에너지 노예’

동아일보입력 2013-08-17 03:00수정 2013-08-3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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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노예, 그 반란의 시작
앤드류 니키포룩 지음/김지현 옮김/360쪽·1만5800원·황소자리
석유의 발견으로 인류의 삶은 일견 편리해졌다. 하지만 현대인은 석유에 꼼짝없이 종속되어 ‘에너지 노예’가 되었다. 저자는 에너지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인류의 미래를 향해 가려면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바다의 석유시추선. 동아일보DB

2009년 어느 일요일 영국의 한 가정에서 집주인 몰래 실험이 진행됐다. 침실 4개가 딸린 집에 사는 4인 가족이 하루 동안 사용하는 에너지를 옆집에서 ‘인간 발전소’가 생산하는 실험이었다. 오븐의 열을 내기 위해 24명이 자전거 페달을 밟았고, 토스트 2장을 굽는 데는 11명이 필요했다. 자전거 페달을 돌린 사람들은 대부분 일을 마치자마자 그 자리에서 뻗었고 몇 명은 며칠 동안 걷지도 못했다. 우리가 무심코 소비하는 에너지가 얼마나 막대한 양인지를 피부로 느끼게 한다.

요즘 폭염에 에어컨 사용이 급증해 대규모 정전 사태가 우려되는 상황이니 그 실험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에어컨을 켜놓는 동안 사람이 자전거 페달을 밟아 전력을 공급해야 한다면? 실험의 고안자는 영국 일간 가디언을 통해 “전 세계 에너지 자원이 부족해지면 노예제도가 부활하리란 점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쯤 되면 조금 무서워진다. 수백 년 뒤 화석연료가 고갈된 지구에서 한여름에 소수의 부유층이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쉬는 사이 수많은 노예들은 땡볕 아래서 헉헉대며 자전거 페달을 돌려야 하는 건 아닐까.

이 책은 에너지와 환경 분야의 저술을 해온 언론인이 화석연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대인에게 보내는 경고다. 책은 인간 노예의 역사를 읊는 것으로 시작한다. 대부분의 고대 문명 제국은 노예의 근력을 바탕으로 건설됐다. 석탄과 석유가 발견되고 이를 동력으로 한 기계가 보편화되면서 인간 노예제는 폐지됐다.

하지만 인간 노예는 ‘에너지 노예’로 바뀌었을 뿐이다. 저자는 화석연료 없이는 돌아가지 못하는 기계를 에너지 노예라고 지칭한다. 나아가 에너지 노예란 석유에 꼼짝없이 종속돼 버린 현대인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의 추산에 따르면 북미 사람 한 명의 연간 석유 소비량 23.6배럴은 자전거 페달을 돌리는 노예 174명을 부리는 것과 맞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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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핵심 주장은 에너지 노예 폐지운동을 벌이자는 것. 책의 초점은 무분별한 화석연료 소비가 유발하는 에너지 부족이나 환경오염에 국한되지 않는다. 화석연료는 인류의 편의와 행복을 증진시킨 노다지가 아니다. 저자는 석탄과 석유가 농업 과학 경제 사회 대도시에 끼친 폐해를 거시적으로 조망하고 성장지상주의에 빠진 현대인의 각성을 촉구한다.

화석연료의 폐해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것보다 심각하고 그 범위도 넓다. 이를 테면 수천 년간 동물과 인간의 근력에 의지해온 농업이 기계화되면서 가족단위 농부들은 대규모 농업회사에 일터를 빼앗겼다. 기업식 농업은 편의에 따라 생산 품종의 단일화를 불러왔다. 한때 밀의 품종은 3만 가지에 이르렀으나 지금은 서너 가지에 불과하고 감자도 한때 5000가지 품종을 자랑했으나 지금은 주로 버뱅크 감자만 생산된다. 또 석유 생산으로 얻는 부는 소수에게 집중돼 불평등이 커지고 많은 석유생산국은 독재국가가 됐다.

그럼 화석연료 대신에 태양열 지열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 저자의 대답은 역시 까칠하다. 현재 생산되는 재생에너지를 다 합쳐도 전 세계 에너지 소비량에 턱없이 못 미치며, 풍력과 태양열 발전은 친환경적이라는 인식과 달리 삼림을 파괴하고 생물계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해친다고 주장한다.

해결책은 하나,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뿐이다. 무절제한 성장지상주의를 반성하고 광적인 소비문화를 자제하며 근거리 여행을 즐기고 텃밭을 가꾸고 공동체를 구축하면서 분수에 맞게 사는 사람들을 저자는 새로운 노예폐지론자라고 부른다.

책은 인류가 미래를 꿈꾸는 한 분명 성찰해봐야 할 이슈를 담은 문제작이다. 다만 석유를 인류의 ‘악의 축’처럼 바라보면서 무분별한 자본주의와 산업화의 폐해를 전부 석유 탓으로 돌려버리는 저자의 논리에 완전히 동의할 순 없다. 에너지 노예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체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것도 아쉽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
리처드 하인버그 지음/노승영 옮김/448쪽·1만7000원·부키

저자는 석유 생산이 어느 시점에 정점에 도달한 뒤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을 가리키는 피크오일 이론의 권위자다. 그는 자원 고갈과 환경오염의 재앙에 다다른 경제는 결국 성장을 멈출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자원 고갈로 비롯된 저성장 기조는 끊임없는 성장을 전제로 구축된 경제시스템에 타격을 주고 이는 금융대란과 사회 불안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제로 성장 시대의 대안으로 사회 결속력 회복을 주장한 점이 신선하다.


◇2030 에너지전쟁
대니얼 예긴 지음·이경남 옮김/936쪽·3만8000원·올

에너지와 국제정치, 지정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저자는 20년 전 ‘황금의 샘(The Prize)’이라는 책으로 퓰리처상의 영예를 안은 바 있는 에너지 미래학자. 이번 책(원제 ‘The Quest’)에선 석유 시장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파헤치고 재생 에너지의 미래를 조망한다. 특히 ‘에너지 이용 효율성’에 주목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는 기술과 생활방식이 그 어떤 에너지 자원보다 중요하고 생태적으로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진보의 함정
로널드 라이트 지음·김해식 옮김/240쪽·1만 원·이론과실천

여기서 ‘진보’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닌 문명의 발전이다. 저자는 너무 많이 ‘진보’하려는 인류의 강박관념 때문에 수많은 문명이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진보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하면 전 인류가 멸망할 수 있다는 것. 자연자본 남용, 인구 증가, 기술개발 가속, 자원 대량소비, 문명의 붕괴라는 흥망성쇠의 방정식을 여러 문명의 사례로 설명한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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