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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기타]“들리는 건 베르디의 오페라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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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기타]“들리는 건 베르디의 오페라밖에 없었다”

동아일보입력 2013-04-13 03:00수정 2013-09-0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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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이탈리아 최고스타의 삶과 작품
◇베르디 오페라, 이탈리아를 노래하다/전수연 지음/340쪽·2만 원/책세상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은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 그는 비탄에 빠진 국민들에게 민 족의식을 불어넣어 이탈리아 독립과 통일의 상징이 됐다. 책세상 제공
올해 오페라의 두 거장 베르디(1813∼1901)와 바그너(1813∼1883)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에서는 이들의 작품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베르디가 스포트라이트를 거머쥔 듯싶다. 방대한 규모에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힌 바그너의 작품보다는, 귀를 사로잡는 선율과 분명한 극적 구성을 두루 갖춘 베르디가 한국 관객의 감성에 더 가깝다는 평이다.

19세기 이탈리아에서 베르디는 최고의 스타였다. 뉴욕트리뷴 유럽특파원 마거릿 풀러는 1847년 “이탈리아에서 들리는 음악은 베르디의 오페라밖에 없다”고 했을 정도다. 베르디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독립전쟁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관객의 기대와 취향을 파악하고 이에 부응하는 능력을 갖춘 덕분이었다.

밀라노 음악계의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던 시골뜨기 청년은 이탈리아 1차 독립전쟁이 전개되면서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이자 통일 운동의 상징이 된다. 베르디를 일약 스타로 만든 작품은 1842년 초연된 오페라 ‘나부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인 ‘가라 꿈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에 이탈리아인들은 열광했다. 바빌론에 끌려가 ‘아름다운 잃어버린 나의 조국’을 그리워하는 노예들은 오스트리아의 압제 아래 고통받는 자신이었다.


베르디는 이후 오페라에서 공동체의 집단심리와 집단행동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합창곡을 사용했다. 민족을 노래하는 애국적 오페라는 베르디 개인과 오페라 극장의 성공 열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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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프랑스 정치사를 전공한 저자는 당시의 유럽사를 펼쳐놓고 그 위에서 베르디의 행보와 작품세계를 촘촘하게 복원해 낸다. 등장인물들이 반교권주의, 반체제적 노래를 부르는 ‘아이다’는 사극의 탈을 쓴 시사물이며, ‘동 카를로스’는 국가와 권력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작품이 갖는 의미를 짚어낸다. 딱딱한 역사와 베르디의 전기가 다층적으로 얽히면서 술술 넘어가진 않지만 당대의 베르디를 입체적인 한 인물로 그려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오페라#베르디#바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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