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윤 요리쌤의 오늘 뭐 먹지?]파리에서 맛본 바게트 샌드위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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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소금집델리의 ‘장봉프로마주’ 샌드위치. 홍지윤 씨 제공
서울 마포구 소금집델리의 ‘장봉프로마주’ 샌드위치. 홍지윤 씨 제공
홍지윤 쿠킹클래스 쉬포나드 운영자
홍지윤 쿠킹클래스 쉬포나드 운영자
88서울올림픽이 끝나고 해외여행 자유화의 물결에 휩쓸려 대학 3학년이던 1990년 유럽여행을 떠났다. 요즘 유행하는 ‘한 도시에 한 달 살기’는 언감생심 상상도 못 하던 시대다. 가이드를 따라서 파리, 런던, 로마 등의 도시들을 메뚜기처럼 옮겨 다니며 2주에 8개국을 도는 빡빡한 스케줄이었다. 뭘 봤는지 뭘 놓쳤는지, 세월과 함께 흐릿해졌지만 여행과 함께했던 음식들은 지금도 선명하다.

유명한 몽마르트르 언덕에 올라 구경하다 지쳐 돌아보니 일행 중 한 친구가 벤치에 앉아 방망이만 한 바게트를 물고 있었다. “생각보다 괜찮다”며 건네주는 바게트에는 버터가 발라져 있고 햄과 치즈가 수북하게 들어 있을 뿐이었다. 겉이 바삭한 바게트의 쫄깃한 속살을 씹을수록 ‘빵이 이렇게 고소한 맛이었나’ 싶게 풍미가 퍼져 나왔다. 그 후로 누군가 샌드위치를 말하면 내겐 그때의 맛이 기준이 됐다.

단순한 요리일수록 제대로 만들기 어렵고 재료가 탁월하면 조리가 필요 없는 법이다.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먹은 장봉프로마주(바게트에 버터를 바르고 햄과 치즈를 넣은 샌드위치)는 좋은 재료로 만든, 단순하지만 훌륭한 요리의 한 예다. 바게트는 프랑스의 주식이고 파리 어디서 사 먹어도 실패하기 어렵다. 거기에 프랑스산 버터를 바르고 유럽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샤르퀴트리(육류로 만드는 햄, 베이컨, 소시지 등의 가공육)와 치즈가 더해졌으니 완벽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바게트는 물론 치즈와 햄을 만드는 공정 자체가 복잡할뿐더러 오랜 세월을 거친 노하우가 들어 있다는 점을 지나칠 수 없다. 뛰어난 재료를 조합만 잘해도 훌륭한 요리가 탄생할 수 있다.

서양요리가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20여 년 전, 샌드위치 전문점이 유행했었고 인기 샌드위치 전문점이 식품기업에 팔리는 일도 생겨났다. 밥, 국, 반찬으로 이뤄진 한식이 아니어도 샌드위치로 한 끼 정도는 충분히 채울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난 탓이다. 그 뒤로 샌드위치 전문점은 사라졌지만 베이커리와 카페에서 꾸준히 샌드위치를 만들어 왔다. 유럽 기술을 습득한 베이커들 덕분에 부드러운 식감을 중시한 일본 제과의 영향에서 벗어나 다양한 샌드위치가 선보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유럽식 가공육을 직접 만드는 샤르퀴트리들이 생겨나면서 그 조합으로 만들어진 샌드위치 수준도 상당하다. 동남아, 멕시코, 스페인 등 국적요리를 즐기게 되면서 각국의 다양한 재료를 접목한 국적 불명의 맛있고 기발한 샌드위치들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나들이에 좋은 계절이다. 오랜만에 김밥 대신 샌드위치에 상큼한 소다가 나쁘지 않을 듯하다.

홍지윤 쿠킹클래스 쉬포나드 운영자 chiffonade@naver.com

○ 소금집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19길 14 장봉프로마주 샌드위치 1만2000원

○ 타르틴 베이커리 서울 강남구 언주로168길 24 차돌반미 샌드위치 1만2000원

○ 큐물러스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275-5 풀드포크 샌드위치 1만 원
#바게트 샌드위치#장봉프로마주#소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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