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원인은 일제 무단통치 아닌 민족차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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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연구회 학술대회서 재조명… 내년 100주년 맞춰 연구총서 발간

한국역사연구회가 17일 서울 종로구 덕성여대 종로캠퍼스에서 개최한 학술대회 ‘3·1운동의 메타 역사, 3·1운동 연구사의 재검토’.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역사연구회가 17일 서울 종로구 덕성여대 종로캠퍼스에서 개최한 학술대회 ‘3·1운동의 메타 역사, 3·1운동 연구사의 재검토’.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역사연구회가 서울 종로구 덕성여대 종로캠퍼스에서 17일 개최한 학술대회 ‘3·1운동의 메타 역사, 3·1운동 연구사의 재검토’에서 3·1운동의 원인과 영향 등을 새롭게 조명한 주장들이 제기됐다.

도면회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발표문 ‘3·1운동의 원인으로서의 무단통치론 재고’에서 3·1운동의 주요 원인으로 ‘민족적 차별’을 꼽았다. 3·1운동 직후인 1919년 6월 각 지역 일본 헌병대장·경무부장 연석회의가 제출하고 조선헌병대 사령부가 편찬한 ‘조선소요사건상황’에 그런 면모가 드러난다는 것. 각 도 단위로 ‘조선인의 불평과 희망사항’이 수집돼 있는데 ‘불평’으로 일본인이 신분 고하를 불문하고 조선인을 멸시하고, 모욕적으로 호칭하고, 차별대우하는 것, 각종 제도적 변화, 과중한 세금 등이 많았다. 도 교수는 “3·1운동의 원인은 식민지 근대가 만들어낸 사회경제적 부담과 민족적 차별”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3·1운동은 무단통치 또는 헌병경찰 정치와 경제적 수탈에 분노한 한민족이 민족자결주의와 고종의 사망 등을 계기로 결집해 일어났다는 인식이 유지돼 왔다. 도 교수는 “이 같은 인과론은 일제강점기 초기 한국 사회가 정체됐고, 일제가 토지 조사사업으로 막대한 토지를 가로챘다는 인식에 바탕에 두고 있다”며 “1990년대 이후 연구를 통해 토지조사 사업의 수탈성이 강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났으므로 3·1운동 발발의 사회경제적 근본 원인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배성준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1918년의 쌀값 폭등, 1918년 말∼1919년 초 스페인 독감의 유행도 민심 이반으로 3·1운동 발생에 단기적으로 영향을 주었는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준형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일본의 인식 변화를 살폈다. 박 교수는 “1969년 동아일보사가 펴낸 ‘3·1운동 50주년 기념논집’은 논문 76편이 수록된 거대한 기획이자 기념비적인 연구 성과였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해 일본의 학술잡지 ‘시소(思想)’도 특집을 꾸렸는데, 여기서 사학자 와타나베 마나부는 ‘조선 민중을 관통해 온 일관된 사상’을 인정하면서 근대적 정신이 결여됐다는 일본의 3·1운동관을 비판했다”고 말했다.

한국역사연구회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1운동 연구총서를 5권으로 발간할 계획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역사연구회#3·1운동#무단통치#헌병경찰 정치#민족적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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