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생존의 비밀은 언어… 이모티콘도 그중 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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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인간학’ 출간한 김성도 교수
인류의 역사, 언어학 관점에서 분석… 인간은 글보다 그림을 먼저 활용
디지털 세대, 창의적 문화 만들 것

25일 만난 김성도 교수는 “인류의 환경이 변하면서 언어 역시 계속해서 변할 것”이라며 “허공에 글씨를 쓰거나 뇌파로 의사소통하는 방식 등 새로운 언어문화가 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25일 만난 김성도 교수는 “인류의 환경이 변하면서 언어 역시 계속해서 변할 것”이라며 “허공에 글씨를 쓰거나 뇌파로 의사소통하는 방식 등 새로운 언어문화가 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앞서 등장한 네안데르탈인보다 신체적 조건이 모두 열등한 동물이었죠. 하지만 단 하나의 차이, 언어를 사용했다는 점이 인류를 지금의 위치까지 오게 한 힘입니다.”

인터뷰 내내 그의 전공이 언어학인지 고고학 혹은 인류학이었는지 구분이 안 됐다. 과학이론부터 정치학, 미술사 그리고 언어·기호학까지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는 그의 지식 세계를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최근 인류의 역사를 언어의 관점에서 분석한 책 ‘언어인간학’(21세기북스)을 펴낸 김성도 고려대 언어학과 교수(54)를 25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이 책은 그가 인문학과 예술, 과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건명원’에서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구어체로 쓰여 있다. 덕분에 언어학에 대한 배경이 없는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는 “서구에선 불후의 명강의로 평가받는 비트겐슈타인이나 미셸 푸코의 강의록이 계속해서 단행본으로 출간돼 새로운 지식 생산에 도움을 주고 있다”라며 “반면 우리나라에선 구술 책이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누구나 읽기 편한 구술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한국의 지적 토양이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고고학자, 과학자 등 인류의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은 이미 많다. 언어학자인 그가 굳이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 이유는 뭘까. 김 교수는 언어야말로 인류 생존의 핵심 조건이었다고 역설한다.

“지구상에 존재한 그 어떤 동물도 단어와 단어를 나누고, 모음과 자음을 구분하는 언어 체계를 가지지 못했어요. 바로 이 언어 덕분에 인류만이 ‘내일’ ‘만약’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소유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협력과 전략, 신뢰라는 엄청난 무기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흔히 언어라고 하면 말과 글만 떠오르기 십상이다. 실제로 언어학의 주된 관심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미지와 그래픽의 언어적 속성에 주목한다. “현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불리는 켈스 복음서나 해부학 분야의 최고 수작으로 평가받는 ‘파브리카’ 등을 보면 모두 글과 그림이 혼연일체돼 있어요. 글보다 그림을 먼저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선택한 인간은 태생적으로 이미지 친화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 면에서 김 교수는 최근 활자 대신 이모티콘 등 이미지 중심의 의사소통을 하는 디지털 세대의 지적 능력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글만이 인간의 사고를 담는 그릇이 아닙니다. 불필요한 단순 암기와 기계적인 학습에서 해방된 이들이 지금껏 개척하지 못한 창의적인 문화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언어인간학#김성도 교수#건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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