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는 인문학을 싣고… 바보상자가 똑똑해졌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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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예능’ 전성시대

“젊은이들에게 창의적이어야 한다고들 강조하는데 10대 친구들이 만든 ‘개사이다’를 한번 보세요. 강아지와 사이다를 합친 이 신조어만 봐도 얼마나 시원합니까. 우리가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들여다보면 창의성의 원천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학 강의나 교양 강좌에서 들을 법한 내용이지만 예능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지난달 26일 tvN ‘어쩌다 어른’에서 방송된 작가 조승연이 밝힌 창의성에 대한 내용이다. 세트장 역시 대학 강의실과 비슷하다. 방송을 보고 있으면 마치 집에서 교양 강좌를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바보상자’라고 불렸던 TV 프로그램이 인문학을 등에 업고 똑똑해졌다. 인문학과 예능을 결합한 프로그램은 채널A ‘사심충만 오쾌남’을 비롯해 tvN ‘동네의 사생활’ ‘어쩌다 어른’, KBS ‘강연 100℃ 라이브’ ‘노홍철×장강명 책번개’ 등 10여 개에 달한다. ‘윤식당’의 나영석 tvN PD도 신규 프로그램으로 인문학 예능을 선택했다. 다음 달 2일 첫 방송 예정인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은 작가 유시민과 서울대 출신 가수 유희열, 소설가 김영하, 정재승 KAIST 교수 등이 출연하며 여행과 인문학을 결합한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방송계의 인문학 열풍은 과거에도 있었다. 2010년대 초반 김미경과 김창옥 등 스타 강사의 강연 쇼가 대세를 이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성공과 자기계발을 위한 담론 위주인 데다 강연을 그대로 중계하는 형식에 머물러 곧 관심이 시들해졌다.

최근 인문학 예능의 특징은 강연 일변도에서 벗어나 철학, 역사, 심리 등 인문학의 주제를 현장감 있게 다룬다는 점이다. 채널A ‘오쾌남’은 신라의 수도 경주와 수원 화성 등 역사적 장소에 출연진이 직접 방문해 역사적 의미를 짚어내고, KBS ‘책번개’는 작가와 일반인이 함께 책에 대해 토론한다. 김은영 대중문화평론가는 “단순 체험담을 전달하는 과거와 달리 최근 인문학 예능은 전달력을 갖춘 전문가들이 등장해 시청자들에게 더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문학 예능의 인기 요인은 뭘까.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문학은 팍팍한 현실에서 벗어나 과거를 돌이켜보고 미래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학문”이라며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커지면서 TV 프로그램에도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문학 예능이 인기를 끌면서 일부 프로그램은 치밀하지 못한 검증 등으로 홍역을 겪기도 했다. tvN ‘어쩌다 어른’에 출연한 스타 강사 최진기는 오원 장승업의 그림을 설명하면서 다른 그림을 등장시켜 논란이 됐다.

비판도 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사실 인문학은 스스로 깊이 성찰해야 하기 때문에 ‘재미’가 없는 게 정상이지만 인문학 예능은 TV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고려해 오락적인 요소가 큰 게 사실”이라며 “인문학 예능이 진정한 의미의 인문학 대중화에 기여한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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