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공소남닷컴] ‘오페라의 유령’ 연출자가 세 번이나 ‘노(NO)’를 외친 이유는?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12월 15일 2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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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에스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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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대규모 월드투어, 부산에 상륙
몇 번을 보아도 면역되지 않는 불멸의 감동
샹들리에 낙하장면의 비밀이 베일을 벗다

“노(No)!”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 협력연출가 라이너 프리드의 대답은 강력하고 단호했다. 14일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였다. 한 기자가 “마지막에 팬텀이 사라지는 장면의 비밀을 알려줄 수 있느냐”라고 질문을 던진 참이었다.

또 다른 기자가 손을 들었다.

“노라고 할 줄 알았다”며 기자는 “한국에서만 20년, 전 세계에서는 30년 이상 공연되고 있는 이 뮤지컬의 트릭들에 대해 보안이 유지되고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프리드 연출이 웃었다.

“나처럼 ‘노’라고 단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웃음).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작품을) 나처럼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것이다.”

프리드 연출은 머쓱한 얼굴을 한 기자를 향해 짓궂은 미소와 마지막 한 방을 날렸다. “(앞으로도 ‘노’라고 할 수 있게) 계속해서 질문해 달라”.

이날 자리에서는 ‘오페라의 유령’의 1막 엔딩을 장식하는, 저 유명한 샹들리에 낙하 장면이 베일을 벗었다. 공연장 천장에 매달려 있다가 객석 코앞의 무대로 곧장 떨어지는 이 샹들리에 장면은 ‘오페라의 유령’을 전설로 만든 공신 중 하나다.

사진제공|에스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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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투어의 알리스터 킬비 기술감독은 기자들 앞에서 두 번에 걸쳐 샹들리에 낙하 장면을 시연해 보였다. 공연 때 객석 중간쯤에 앉아 보았던 샹들리에 낙하 장면을 가까이에서, 그것도 두 번이나 연달아 보게 되니 마치 슬로모션을 보듯 새롭고 경이로웠다.

“샹들리에는 천장에 있는 두 개의 대형 추에 매달려 있다. 도르래의 케이블이 풀리면 샹들리에가 낙하한다. 그런 뒤 케이블을 움직여 샹들리에가 곡선을 그리며 무대 앞에 떨어지게 만든다.”

킬비 감독은 “이번 월드투어에서는 바닥에 떨어질 때 부담을 줄이기 위해 샹들리에의 무게를 줄였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의 프로듀서인 신동원 S&CO 대표에 따르면 현재 사용되고 있는 샹들리에의 경우 무게만 가벼워진 것이 아니라 하강 속도도 1.5배 빨라졌다고 한다. 기존에 사용하지 않던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을 사용한 것도 달라진 점이다.

‘오페라의 유령’도 나름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진화’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 기자가 또 있었나 보다.

이번엔 “1980년대에 초연된(정확히는 1986년이다) 작품이다 보니 요즘 관객들에게는 음악이 다소 올드하다고 느껴질 수 있겠다. 혹시 편곡을 새롭게 할 계획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프리드 연출의 대답은 또 한 번 강력한 “노”였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연출 라이너 프리드. 사진제공|에스앤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연출 라이너 프리드. 사진제공|에스앤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오페라의 유령이 오랜 기간 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음악 덕분이다. 옛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변화를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만약 제가 불고기의 재료를 제 맘대로 바꿔서 내놓는다면 그걸 드시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하하하, 먹고 싶지 않군요.

이번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는 브로드웨이 초연(1988년) 30주년을 맞아 기획됐다. 아시아와 중동을 아우르는 역대 최대 규모의 월드투어로 마닐라, 싱가포르, 쿠알라룸푸르, 텔 아비브, 두바이에 이어 부산에 상륙했다.

국내에서는 부산 초연을 시작으로 서울, 대구에서 공연된다. 2012년 내한공연(25주년 기념) 이후 7년 만에 성사된 오리지널 무대라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 뮤지컬 팬들의 가슴에 방망이질을 하고 있다.

13일 부산 드림씨어터 객석에 앉아 역사적인 ‘오페라의 유령’ 부산 초연을 지켜보았다. 몇 번을 보아도 좀처럼 감동이 면역되지 않는 ‘오페라의 유령’이다. 첫 장면인 경매 장면에서부터(이게 뭐라고) 슬슬 발목을 돌리기 시작하는 심장은 유리구슬 6000개가 장식된 샹들리에에 휘황찬란한 불이 들어오자마자 눈을 질끈 감고 뜀박질을 시작한다.

유령 역의 조나단 록스머스는 역대 최연소 유령을 기록한 배우.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작품에서 6편이나 주역을 맡았을 정도로 그의 작품에 ‘특화된’ 배우다.

그런 조나단 록스머스도 부산 초연을 앞두고 노심초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관객들에게 워낙 친숙한 전임자(?)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의 유령 역은 물론 국내에서 다수의 작품에 출연해 한국 관객들로부터 ‘빵 아저씨’란 애칭까지 얻은 브래드 리틀이 있었던 것이다.

록스머스는 프리드 연출을 찾아가 “내가 (한국 관객들을 위해) 브래드 리틀처럼 연기하는 것은 어떨까”하고 진지하게 물었다고 한다. 이 질문에 대한 프리드 연출의 대답은 독자들도 예상했을 것이다.

“노!”

“브래드 리틀은 나와 ‘오페라의 유령’을 오래도록 함께 작업했다. 그는 훌륭한 배우이며 지금도 나의 좋은 친구다. 하지만 당신은 브래드 리틀이 아니라 조나단 록스머스다. 당신은 당신만의 독특하고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 그것을 (한국 관객들에게) 보여 주어라.”

사진제공|에스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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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초연무대에서 하얀 유령 마스크를 쓴 조나단 록스머스는 과연 그만의 독특하고 뛰어난 재능을 입증해 보였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유령 중 가장 연기가 섬세하게 느껴졌는데, 이것이 프리드 연출이 언급한 “그만의 진실성과 솔직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유령이 지닌 카리스마와 공포의 무게감을 덜어낸 대신 인간다움을 얹어 올렸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크리스틴과의 키스신은 더없이 애절해 눈물샘을 헤집고 만다.

크리스틴 다예 역의 클레어 라이언은 2012년 내한 공연 때에도 왔던 배우다. 아름다운 외모와 청아한 목소리로 “크리스틴 그 자체”라는 평가를 받아 온 ‘웨버의 뮤즈’. 이번 공연에서도 자신의 진가를 반짝반짝 드러낸다. 크리스틴의 교과서로 부족함이 없다.

맷 레이시는 거장 해롤드 프린스가 낙점한 라울로 알려져 있다.

‘오페라의 유령’의 오리지널 연출가이기도 한 해롤드 프린스가 오디션 장에 왔다가 맷 레이시가 노래하는 것을 보고는 “저 사람이 라울이다”라고 했다는 것. 프리드 연출은 “늘 그랬듯 그의 말은 옳았다”며 맷 레이시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지난 반세기에 걸쳐 숱한 걸작 뮤지컬을 남긴 거장 해롤드 프린스는 지난 7월 31일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전 세계 41개 국, 183개 도시, 1억 4000만 명을 매료시킨 불멸의 걸작 ‘오페라의 유령’, 오리지널 내한 공연은 2020년 2월 9일까지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공연한 뒤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3월14일~6월26일)과 대구 계명아트센터(7~8월) 공연으로 이어진다.

부산|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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