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터너티브 농부’ 기자 곤도의 행복 찾기 “하루 1시간 일해 1년 식량 마련”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1일 10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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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도 고타로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는 하루 1시간 일해 1년 식량을 마련하고 나머지는 온전히 글쓰기에 매달리는 얼터너티브 농부 생활을 6년째 하고 있다. 그는 “항상 좀 더 재밌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야 행복해진다”고 강조했다. 곤도 고타로 제공
곤도 고타로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는 하루 1시간 일해 1년 식량을 마련하고 나머지는 온전히 글쓰기에 매달리는 얼터너티브 농부 생활을 6년째 하고 있다. 그는 “항상 좀 더 재밌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야 행복해진다”고 강조했다. 곤도 고타로 제공

30년 넘게 일본의 대표적인 신문사인 ‘아사히신문’ 기자로 활동 중인 곤도 고타로(近藤康太郞·56) 씨는 자칭 ‘얼터너티브 농부’다.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을 빗댄 표현이다. 강렬한 메탈 사운드를 앞세운 정통 락과 이별을 선언하며 등장한 얼터너티브 락처럼 자신도 ‘전통적인 농부의 삶과는 다른 방식으로 농촌의 삶을 살겠다’는 의미에서 붙인 것이다. 쉽게 말하면 “본업으로 글을 쓰고, 부업으로 농사짓는 신개념 농부가 되겠다”는 의도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그는 농사일을 할 때도 작업복 대신 하와이풍 알로하셔츠를 입고, 취재를 다닐 때엔 경차 대신 포르셰 오픈카를 몰고 다닌다. 농사일도 자신이 먹고 사는 데 필요한 만큼만 한다. 농사일로 보내는 시간은 최소화하고, 대신 남는 시간 대부분은 취재 활동과 글쓰기에 이용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낮에는 농부로, 오후와 밤에는 기자이자 작가로서 사는 식이다.

올해로 얼터너티브 농부생활 6년째를 맞는다는 곤도 씨는 최근 자신의 생활을 고스란히 담아 ‘최소한의 밥벌이’(원제: おいしい資本主義·맛있는 자본주의·쌤앤파커스)라는 책도 펴냈다. 다소 엉뚱해 보이지만 직장생활에 찌든 한국의 중장년층이라면 한번쯤 꿈꿔봤을 삶이다. 고령화로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하는 고민에 빠진 한국 직장인들에게 답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와의 e메일 인터뷰를 진행한 이유다.

곤도 씨는 도쿄(東京) 시부야(澁谷)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게이오대 문학부)을 졸업하고 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면서도 도쿄 인근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렇게 50년을 살았던 그는 2013년 말 회사에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근무를 요청했다.

“신문사 입사 후 문화부와 잡지 편집부, 미국 뉴욕 특파원 등을 지내며 늘 취재와 기사작성에 파묻혀 지냈다. 그러다 잡지 편집장이 돼 회사경영을 책임지면서 글을 쓰지 못하게 되자 괴로웠다. 글을 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도쿄에 있으면 좋아하는 글쓰기가 매너리즘에 빠질 것 같은 ‘Writer’s Block(글 길이 막힌다는 뜻)‘에 빠질 것 같은 두려움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듬해 2월 초 큐슈(九州) 북서부 나가사키(長崎) 현 이사하야 지국으로 발령을 받는다. 도쿄보다는 오히려 한국에 가까운 곳이다. 거기서 그는 혼자서 생활해야만 했다. “아는 사람이 없는 시골에서 인생을 리셋(초기상태로 되돌리는 것)하기에 적합한 곳”으로 여겨졌다.

그는 이사하야로 가기 전까지만 해도 농촌생활을 거의 알지 못했다. 그에게 농촌은 “폐쇄적이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곳”이라는 선입견만 있었다. 하지만 실제 농촌은 달랐다. “시골에도 도시처럼 여러 가지 생각과 목소리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얼터너티브 농부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무엇보다 땅을 갈고 물을 대고 모종을 심고 수확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초보에게는 모두 힘에 겨웠다. 다행히 농사를 짓는 스승을 만나면서 고비마다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6년차 농부로서 그는 “해마다 쌀 수확량이 크게 늘었다”고 자랑할 정도가 됐다. 첫 해엔 180㎡ 규모에서 85kg의 쌀을 수확하는 수준이었다면 올해는 경작 면적만 5배나 늘렸다.

곤도 고타로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는 하루 1시간 일해 1년 식량을 마련하고 나머지는 온전히 글쓰기에 매달리는 얼터너티브 농부 생활을 6년째 하고 있다. 그는 “항상 좀 더 재밌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야 행복해진다”고 강조했다. 곤도 고타로 제공
곤도 고타로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는 하루 1시간 일해 1년 식량을 마련하고 나머지는 온전히 글쓰기에 매달리는 얼터너티브 농부 생활을 6년째 하고 있다. 그는 “항상 좀 더 재밌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야 행복해진다”고 강조했다. 곤도 고타로 제공

물론 지금도 모내기 작업을 하면 녹초가 돼 쓰러진다. 땅을 갈아엎고, 진흙을 파내다보면 “내가 죄를 지어 이렇게 지내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럽다. 매년 이런 고민을 하지만 겨울이면 잊어먹고 봄이 되면 다시 농사일에 빠져든다.

농사에 재미를 붙이면서 글쓰기에도 탄력이 붙었다. 그는 “시간을 조절하는 게 쉽지 않지만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농사일을 시작해 끝내고, 오후와 밤을 도와 글을 쓰는 삶이 즐겁기 그지없다”고 자랑했다.

한국 독자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묻자 “일본에도 나를 비롯해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며 운을 뗀 뒤 “국가와 국가의 관계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개인과 개인의 관계는 그것과 다르다. 국가나 사회로부터 독립한, 개인끼리 앞으로도 우정의 길을 걸어 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Go with the flow! Enjoy the Ride!(물처럼 흐르며, 마음 편하게 즐기자)”는 말도 덧붙였다. 최근 양국의 정치·외교적인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지만 인간적인 교류는 이어가며 살자는 당부의 말처럼 들렸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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