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 “적국 수괴 도륙” 선서문 문화재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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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王에 수류탄 의거 한달전 작성… 백범에 자금 부탁한 서신도 포함
한용운의 심우장은 사적지정 예고

이봉창 의사가 일왕을 도륙하겠다는 결의를 기록한 국한문 혼용의 ‘이봉창
의사 선서문’. 문화재청 제공
이봉창 의사가 일왕을 도륙하겠다는 결의를 기록한 국한문 혼용의 ‘이봉창 의사 선서문’. 문화재청 제공
“나는 적성(赤誠)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서하나이다. 선서인 이봉창.”

한인애국단 소속 이봉창 의사(1900∼1932)는 1931년 12월 13일 중국 상하이 안중근의 동생 안공근의 집에서 이 같은 선서문을 남겼다. 이 의사는 선서문을 목에 걸고, 양손에 수류탄을 든 채 환한 웃음을 지으며 생전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남겼다. 나흘 뒤 중국을 떠나 일본으로 들어간 이 의사는 1932년 1월 8일 도쿄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던 일왕 히로히토에게 수류탄 2발을 던진다. 아쉽게도 한 발은 불발됐고, 다른 한 발은 말의 다리에서 터져 거사는 실패했다. 이 의사는 그해 10월 10일 일본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했다.

만해 한용운이 조선 총독부 청사 방향을 피해 일부러 햇볕이 덜 드는 동북향으로 지은 ‘심우장’. 문화재청 제공
만해 한용운이 조선 총독부 청사 방향을 피해 일부러 햇볕이 덜 드는 동북향으로 지은 ‘심우장’.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은 항일독립 문화유산인 ‘이봉창 의사 선서문 및 유물’을 등록문화재로 예고한다고 12일 밝혔다. 이 의사의 선서문을 비롯해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와 봉투’, ‘이봉창 의사 의거자금 송금증서’ 등 3건이다.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와 봉투’는 이 의사가 일본에 도착한 뒤인 1931년 12월 24일 기노시타 쇼조(木下昌藏)라는 이름으로 중국 상하이에 머물던 김구에게 의거 자금을 부탁하기 위해 보낸 서신 일체다. 편지에는 의거를 ‘물품’에 비유하며 “물품은 확실히 다음 달 중에 팔리니까 아무쪼록 안심하십시오. 또한 물품을 팔게 되면 미리 전보로 알려드릴 테니 기다려 주십시오”라고 적혀 있다. 이에 김구가 이봉창에게 송금한 문서가 ‘이봉창 의사 의거자금 송금증서’다. 김구는 1931년 12월 28일 요코하마 쇼킨(正金)은행 상하이 지점을 통해 100엔을 보냈다.

한편 문화재청은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중 한 명으로 기미 독립선언서를 읽은 만해 한용운(1879∼1944)이 1933년 직접 지어 1944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11년간 거주한 서울 성북구 심우장(尋牛莊)을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다.

한양도성 인근 북정마을에 있는 심우장은 ‘소를 찾는 집’이라는 뜻으로, 소는 불교 수행에서 ‘잃어버린 나’를 빗댄 말이다. 심우장은 전형적인 근대기 도시 한옥으로, 남향이 아닌 동북향으로 지은 점이 특징이다. 만해가 조선총독부를 바라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햇볕이 덜 드는 방향을 택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당시 민족지사와 문인들이 교류하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이봉창 의사 선서문#심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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