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본 부산퀴어축제…긴장속에 ‘무지개 파도’ 일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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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10월 13일 20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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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제주와 달리 신체적 충돌 없어

“성소수자인 내 친구들이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그들을 지지하고 사랑할 것”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연대, 힘 끈끈하게 하는 축제”

한층 외연을 확장한 ‘무지개 파도(Surfing the rainbow)’가 13일 오후 해운대 구남로 광장 일대를 뒤덮었다.

해운대 해수욕장 앞에 설치된 대형 무대에 오른 드래그 퀸(drag queen, 여장을 한 남성 공연자)이 빠른 비트의 음악에 맞춰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자 환호가 터져나왔고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상징하는 일곱빛깔 무지개 깃발은 더욱 커다란 물결로 이어졌다.

태풍 ‘콩레이’로 한 주 연기된 이번 축제는 앞서 인천과 제주 퀴어축제에서 발생한 신체적 충돌과 부상자 발생에 대한 우려로 긴장감을 동반했다. 경찰력도 24개 중대인 2100명이 현장에 투입됐다.

하지만 해운대 구남로 광장에서 동시에 행사를 개최한 부산퀴어문화축제와 레알러브시민축제 조직위원회 모두 축제의 가치를 퇴색시키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부산퀴어문화축제 측은 행사 전부터 경찰과 사전 협의를 긴밀하게 진행했고 레알러브시민축제 또한 1인 시위와 현수막을 통해 ‘동성애’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현했지만 가족단위 행사를 동반하면서 축제 본연의 분위기를 이어갔다.

퀴어축제 현장을 지나면서 성소수자들을 향한 비난성 발언과 함께 고성을 지르는 일부 레알러브시민축제 참가자도 있었지만 걱정했던 무력 충돌이나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레알러브시민축제에는 부산기독교총연합회, 행복한윤리재단, 부산성시화운동본부, 부산복음화 운동본부 등이 참여했고 부산퀴어축제에는 부산성소수자인권모임QIP, 비오뒤 무지개 재단, 변혁당부산시당, 부산반빈곤센터가 동참했다.

◇성정체성 스펙트럼 65가지 범주…“우리 아이는 팬로맨틱 에이섹슈얼 젠더퀴어”

이날 행사에는 성소수자부모모임 부스도 눈길을 끌었다. 부스에서는 자신의 자녀를 향한 차별과 혐오라는 사회 테두리를 걷어내기 위해 부모들이 공동저자로 참여한 도서 ‘커밍아웃스토리’가 판매됐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활동중인 정은애씨(54)는 “저희 아이는 트랜스젠더”라며 “정확히 말하면 팬로맨틱 에이섹슈얼 젠더퀴어(panromantic a-sexual Genderqueer, 모든 성별에 로맨틱 끌림을 경험하지만 어떤 성별에게도 성적 끌림이 없는 무성애 트랜스젠더)”라고 설명했다.

기자가 난생 처음듣는 성소수자 정체성을 분류 용어에 당황하자 그는 예상했다는 듯 미소지으면서 정확한 용어로 한 글자 한 글자를 되짚어 주었다.

정씨는 “우리가 흔히 아는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여자에서 남자, 남자에서 여자로 성별을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안에는 65가지 정도로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며 “저희 아이의 경우 성 정체성은 젠더퀴어로서 트랜스젠더 수술을 했고 성지향성의 경우 자신의 성정체성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팬로맨틱’”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렇게 막힌 사람이 아닌데도 우리 아이가 자신의 성정체성에 굉장히 많이 괴로워하다 죽으려고도 했다”며 “사회에서 아이들을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축제 부스에 참가하게 됐다”고 전했다.

또 “우리와 조금 다르다고 해서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이라며 “성숙한 사회라면 성소수자들이 얼마나 세상의 아름다움을 이루는 존귀한 존재인지 깨닫고 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친구와 함께 부산퀴어축제를 방문한 모라이아(26)는 축제에 참가한 의미에 대해 묻자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을 향한 지지선언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삶에는 옳은 삶과 잘못된 삶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며 “나의 경우 삼촌이 게이였는데 그분은 평생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다 돌아가시기 직전 나의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커밍아웃을 하고는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이어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자신의 성지향성을 알게된 친구들을 사귀게 됐는데 그들은 가족들로부터 쫓겨나거나 스스로 배척되어 갔고 언제나 힘든 상황을 겪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며 “내가 이렇게 (성소수자들을)지지하고 어떤 상황을 겪더라도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내가 친구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라고 강조했다.

◇퀴어축제, 사회적 약자·소수자를 지키려는 시민단체 연대로 한층 강화

시민사회단체의 참가 규모도 한층 넓어졌다. 올해는 주한미국대사관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부스에 참여하는 등 시민사회단체와 유관기관 50여곳에서 힘을 보탰다.

부산퀴어문화축제에 올해 처음 참가한 주한미국대사관 공공외교과 대일 크라이셔(Dale.G.Kreisher) 공공외교참사관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평등한 권리와 입장을 가진다는 건 미국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적인 가치”며 “지난 해에는 늦게 연락을 받아 참석하지 못해 기념품 가방만 전달했지만 올해는 함께하게 됐다”고 말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문제를 특정 세력간의 갈등으로 부추기는 행태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성소수자에 대한 일방적인 혐오와 차별을 갈등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당하는 폭력과 혐오를 마치 기계적 중립처럼 서로가 충돌하고 갈등으로 규정짓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혜연 부산퀴어축제 사무국장은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를 아주 즐거운 방식으로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라며 “이곳은 퀴어뿐 아니라 장애인, 여성, 청소년 등 사회에서 소수자라고 불리는 분들이 부스를 함께 열고 연대하면서 힘을 끈끈히 하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부산퀴어문화축제는 해운대 일대 2.8km 구간을 행진하는 퍼레이드로 마무리됐다. 부산레알시민축제 참가자들이 3km 거리 행진을 끝내고 먼저 복귀하는 과정에서 마찰 우려로 잠시동안 긴장감이 고조되기도 했지만 다행히 큰 사고없이 행사가 끝났다.

제2회 레알러브축제 총괄기획을 맡은 성창민 목사는 “인천이나 제주처럼 퀴어축제를 준비한 분들에게 불필요한 행동으로 인해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도록 준비했다”며 “가정과 생명, 사랑 등 우리가 지니는 가치의 강함을 드러내기 위해 축제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또 “성소수자를 혐오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며 “퀴어축제를 통해 동성애를 양산하는 병폐가 있다고 보고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ㆍ경남=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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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부산 해운대구 구남로 인근에서 열린 ‘제2회 부산퀴어문화축제’ 행사장 반대편에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종교단체인 ‘제2회 레알러브시민축제’ 회원들이 동성애 반대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2018.10.13/뉴스1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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