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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전두환의 ‘완판남’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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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전두환의 ‘완판남’ 아들

동아일보입력 2014-01-30 03:00수정 2014-01-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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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들은 독학으로 그림을 익혔다. 명나라의 ‘고씨화보’(1603년), 청나라 때의 ‘개자원화보’(1679년) 같은 미술 교본이 유용하게 쓰였다. 그림 공부는 이 교본을 그대로 흉내 내서 그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선대 화가의 작품을 그대로 베끼면 임모(臨摸), 한발 나아가 나름대로 소화해 그린 것은 방작(倣作)이라고 했다. 임모와 방작을 거듭한 끝에 독창적 화풍이 탄생했다.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된다는 이치는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나 보다.

▷그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를 위한 서울옥션의 온-오프라인 경매에서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 씨가 직접 그린 작품 20점이 모두 낙찰되는 기록을 세웠다. 낙찰 총액은 1404만 원으로 작품들이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의 화풍(畵風)을 빼닮은 점이 눈길을 끈다.

▷전 씨는 베이컨 그림의 애호가로 알려졌다. 베이컨은 인간의 형상을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한 작업으로 20세기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작품을 보면 절망과 공포의 절규가 화폭 밖으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듯하다. 지난해 11월 미국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베이컨의 그림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가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1억4240만 달러, 당시 우리 돈 1528억 원에 팔렸다. 노르웨이 출신인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가 세운 최고가 기록(1억1990만 달러)을 1년 반 만에 갈아 치웠다.

▷낙찰된 작품은 전 씨가 1989, 90년 미국 유학 시절에 그린 습작이다. 성난 민심에 쫓겨 부모가 백담사에 도피했을 때와 시기적으로 겹친다. 어두운 색채와 일그러진 인체가 혼재된 그림에서 내면의 불안이 드러나 있다. 습작은 개인의 일기장과 같다. 20대에 그린 미숙한 습작이 고스란히 공개된 것도 망신스러운데 뿔뿔이 흩어져 팔리는 것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권력 다툼을 다룬 인도 영화 ‘가문의 법칙’에 등장한 아버지의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내가 한 일 때문에 네가 벌을 받을 줄 알았다면 다르게 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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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전두환#추징금 환수#전재용#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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