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손효림]한국 여성의 계급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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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 ‘설국열차’는 빙하기가 닥친 후 살아남은 사람들이 탄 기차 속 계급사회를 직설적이고 충격적으로 그렸다. 기차는 부유한 사람들이 탄 ‘앞쪽 칸’과 굶주림속에 핍박받는 사람들이 탄 ‘꼬리칸’으로 철저히 구분된다. 귀족과 평민, 양반과 천민 같은 신분은 사라졌지만 부(富)에 따른 계급 칸막이는 점점 더 견고해지는 현실을 비틀었다.

▷한국에서는 여성들 간에도 계급이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가장 아래가 ‘공부 잘하는 여성’이다. 성적이 좋은 여성이 사회에 진출해 성공하더라도 이를 온전히 인정하지 않는 현실을 냉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 바로 위에는 ‘얼굴 예쁜 여성’이, 다시 그 위에는 ‘시집 잘 간 여성’이 자리 잡는다. 가장 꼭대기에 있는 계급이 재미있다. ‘공부 잘하는 자녀를 둔 여성’이다.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말이 있듯 자식 비교가 심한 문화 때문일 것이다.

▷실제 공부 잘하는 자녀를 둔 엄마의 ‘파워’는 막강하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의 부인은 딸을 대원외고-서울대 법학과에 진학시켜 다른 학부모들로부터 상담 요청이 쇄도했다고 한다. 이 경험을 ‘대치동 엄마들의 입시전략’이라는 책에 소개했다가 장관 인사검증 과정에서 사교육을 조장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8년간 철학 수업을 듣게 했다” “서울대를 겨냥해 고교 2학년 때부터 경시대회 준비를 했다”며 콕콕 찍어주는 조언에 엄마들은 환호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있지만 한계가 여전하다 보니 여성들 스스로 ‘자녀의 성공=나의 성공’이라는 틀에 갇혀 대리만족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94일 앞으로 다가왔다. 수능 결과에 따라 엄마의 ‘계급’도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명문대에 진학한 자녀가 딸이라면? 가장 아래 계급으로 들어가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최상위층으로 신분 상승을 하려면 이 딸은 나중에 공부 잘하는 자녀를 둬야만 한다! 끝없는 도돌이표의 반복이다. 이 사슬을 끊어내려면 여성이 먼저 자신의 인생을 자녀와 연관 짓지 말고, 스스로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시대는 과연 올 것인가.

손효림 경제부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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