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손 묶인 치매환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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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지퍼를 올리지 않고 그냥 나오면 건망증, 지퍼를 열지도 않고 볼일을 보면 치매…. 이런 식의 우스개 시리즈가 있지만 치매와 건망증을 비교하는 것은 난센스다. 건망증은 증세고 치매는 질병이다. 치매는 인간 파괴적인 질병이다. 환자의 뇌를 파괴하고, 인격을 파괴하고, 가족의 삶을 파괴한다. 간병에 지친 나머지 부모나 배우자를 살해하는 소위 ‘간병 살인’이 유독 많은 분야가 치매다.

▷보건복지부의 2012년도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치매 유병률은 9.19%, 환자 수는 54만 명에 이른다. 20년마다 치매환자 수가 2배가량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감안할 때 환자는 2030년 127만 명, 2050년 271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치매는 완치가 어렵고 치료비가 많이 드는 질병에 속한다. 2010년도 1인당 치매 치료비는 310만 원으로 4대 중증질환 가운데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을 합친 것보다 더 많았다. 4대 중증질환보다 치매 대책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중증 치매에 대해서는 환자와 가족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인지 능력이 떨어져 가족도 못 알아보고 욕설과 돌발 행동을 일삼는 환자를 삶에 바쁜 가족이 돌보기는 어렵다. 국가 치매관리종합계획의 골자도 치매환자를 조기에 발견해 진행을 늦추고 중증 치매환자에 대한 장기요양서비스를 확대해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치매에 장기 요양보험이 적용되면서 전국에 요양병원이 생겨난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요양병원의 질이다.

▷경기 포천시의 요양병원에서 불이 났는데 침대에 손이 묶인 환자가 탈출하지 못해 사망했다. 환자 치료보다는 격리에 급급했던 병원의 행태가 빚은 후진적 사고다. 경찰은 이 환자가 손목의 억제대를 풀기 위해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다 불을 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병원은 환자의 결박이 불가피했고 가족 동의도 받았다고 하지만 환자 가족이 뭘 알겠는가. 정부는 병원의 과실 여부를 철저히 따지되 이번 기회에 장기 요양보험료만 노리는 부실 병원을 가려낼 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치매#간병#요양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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