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사에게 필요한 한 줌의 공기[오늘과 내일/하임숙]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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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떠오르려면 필요한 건 한 줌의 공기
공기 역할 해야 하는 정부는 지금 어디에

하임숙 산업1부장
하임숙 산업1부장
작년에 의외로 실적이 턴어라운드된 한 대기업 경영자를 연초에 만났다. 매출, 영업이익 모든 면에서 선방해 축하한다고 하자 그는 좋아할 일만은 아니라며 자신의 잠수 경험을 꺼냈다.

젊은 시절 취미로 잠수를 종종 즐겼던 그는 어느 날 평소 내려가던 수심 8m보다 훨씬 깊은 27m까지 내려갔다. 깊은 바다가 보여주는 매력에 푹 빠지기도 했고, 수차례의 경험상 이 정도는 내려가도 되겠다 싶은 자신감도 있었다고 했다. 즐길 만큼 즐긴 뒤 위로 떠오르려 하자 이게 웬일인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몸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극도의 공포가 찾아왔다. 호흡이 가빠지면서 등에 멘 압축공기실린더 속의 공기는 더 빨리 소진되는 것 같았다.

이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같이 갔던 회사 선배였다. 멀리서 그가 발버둥치는 모습을 본 선배는 가까이 와서 손짓 발짓으로 입고 있던 조끼에 공기를 집어넣으라고 했다. 바다가 깊어질수록 수압은 더 커졌고 수압에 짓눌렸던 구명조끼에 더 필요했던 건 한 줌의 공기였던 것이다. 당황해서 완전히 까먹었던 그 사실을 떠올렸고, 산소통에서 조끼로 공기를 밀어 넣자마자 아무리 발버둥쳐도 떠오르지 않던 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고 했다.

살았다는 안도감도 잠깐, 그는 또 다른 위기에 봉착했다. 27m 아래에선 필요했던 공기 한 줌이 서서히 수압이 줄어들면서 내부에서 지나치게 팽창해 몸이 로켓 추진체를 단 것처럼 속도를 제어할 수 없게 됐다. 원래 잠수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일정 높이까지 올라오면 얼마간 쉬면서 몸속의 질소를 배출해야 한다. 다시 선배의 도움으로 공기를 빼가며 무사히 올라왔다.

이 경영자는 당시의 경험을 현재 상황에 빗댔다. 일년 내내 실적이 가라앉았고 여러 하방압력이 거셌지만 약세였던 원화 환율이 한 줌의 공기 역할을 해 바닥에 있던 기업을 위로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물론 이 회사가 부품의 표준화, 공용화로 비용 절감이라는 발버둥을 치지 않았으면 아무리 부력의 도움이 있어도 정상적으로 떠오르긴 힘들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호실적을 놓고 좋아할 일이 아니라고 했던 건 잠수병을 우려한 거였다. 기업 실적도 중간중간에 쉬어가면서 천천히 올라가야지 한 번에 급상승하면 여러 이해관계자, 특히 노조의 기대치와 요구만 높아지고, 그러다 보면 꾸준한 성장을 이뤄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딱 1% 성장만 매년 이뤄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작년이 최악인 줄 알았더니 연초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한국 경제가 다시 몸살을 앓고 있다. 10일부터 중국이 공장 가동을 재개한다고는 하나 얼마나 많은 근로자가 조업에 참여할 수 있을지, 바이러스 확산세는 더 가속화되지 않을지, 공장이 정상 가동돼 세계의 부품 공급망이 다시 제 역할을 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한국 기업들은 너무 깊이 내려간 잠수사의 고통을 더 길게 겪어야 할 수도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한 줌의 공기와 같은 도움이다.

기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주체는 누가 뭐래도 정부밖에 없다. 1970, 80년대 고도성장기에 우리 정부는 기업과 한 팀을 이뤄 앞에서 끌고 뒤에서 달리며 성장을 이끌었다. 그런데 요즘은 이미 각자 잘하고 있는 대기업에 “공동 사업 아이디어를 내라”고 하거나, 글로벌 시장에서 소송까지 걸어가며 피 튀기게 경쟁하고 있는 기업들에 “손잡고 기술을 공유하라”고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기업의 몸을 띄워 줄 공기는 어디서 찾나.
 
하임숙 산업1부장 artemes@donga.com
#코로나 바이러스#대기업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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