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에 맞선 청소년 어벤져스[현장에서/한성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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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를 꿈꾸는 전국 중고교생 6명이 만들어 배포한 ‘유바이러스 맵’.
개발자를 꿈꾸는 전국 중고교생 6명이 만들어 배포한 ‘유바이러스 맵’.
한성희 사회부 기자
한성희 사회부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이 유행해 모두들 불안에 떠는데, 어리다고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문정민 양(15)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중학생인 문 양은 꿈이 ‘프런트엔드 개발자’란다. 생소하지만, 인터넷 웹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간판 페이지를 만드는 개발자를 일컫는다. 문 양은 “어른이 돼서도, 우리 국민이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얻을 웹을 선보이고 싶다”며 포부를 드러냈다.

신종 코로나 여파가 갈수록 거세지는 가운데, 문 양처럼 개발자를 꿈꾸는 10대 6명이 한데 뭉쳤다. 사는 곳은 각자 다르지만, 서로 의기투합해 신종 코로나의 확산 경로를 알려주는 웹사이트 ‘유바이러스 맵’(uvirus.kr)을 만들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이 맵에 접속하면 국내 확진자의 이동 경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진료소 현황이나 관련 뉴스, 해외 확진자 상황 등도 실시간으로 소개된다.

놀랍게도 이 ‘어벤져스’의 평균 나이는 14.8세다. 전북 전주시 동암고에 다니는 오승현 군(17)만 고등학생. 세종시 소담중 허형준 군(15)과 경기 평택시 오성중 정우준 군(14), 대전 삼천중 박성민 군(14), 전남 순천시 향림중 강창완 군(14)은 모두 중학생이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개최한 한 청소년 전국대회에서 인연을 맺었다. 이후 같이 청소년 코딩 커뮤니티를 운영하다 신종 코로나가 퍼지자 지난달 25일 맵을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시행착오가 없진 않았다. 온라인 자료를 선별하는 건 쉽지 않았다. 지금도 가짜뉴스를 걸러내기 위해 개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버를 마련하는 등 돈도 꽤 들었다. 지원받을 곳이 없어 용돈을 털었다.

하루라도 빨리 도움이 되고자 이들은 밤을 지새웠다. 역할에 따라 철저하게 자기 몫을 다했고, 사용자들이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고심했다. 결국 착수 8일 만에 완성해 시중에 배포했다. 유바이러스 맵은 공개 3일 만에 누적 사용자가 4000명을 넘었다고 한다.

당당한 개발자인 강 군은 “뭣보다 확진자의 동선을 짤 때 질병관리본부가 제공한 자료가 상세하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소감을 들려줬다. 팀에서 막내인 그는 “개인정보도 보호해야 하지만 국민의 알 권리도 중요하다. 허용 가능한 범위에서 확진자의 이동 경로를 추가 공개하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달 20일 신종 코로나 첫 번째 확진자가 나온 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 그간 들려온 건 무거운 소식이 대부분이었다. 얼마나 갈지 피곤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잊지 말자. 어떤 상황에도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하는 이들이 있다. 선의(善意)가 살아있는 한 어둠은 언젠가 물러간다. ‘10대 어벤져스’가 바로 그 증표다. 희망은 여기에 있다.
 
한성희 사회부 기자 chef@donga.com
#유바이러스 맵#신종 코로나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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