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아시아 바이러스’[횡설수설/김영식]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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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흑사병 의사들은 새의 부리 모양으로 만든 마스크를 쓰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 외투를 입었다. 흑사병은 감염된 쥐를 문 벼룩을 통해 사람에게 전염되지만 이런 사실을 몰랐던 당시에 공기로 전염된다고 지레짐작하고 차단에만 신경 쓴 것이다. 눈 부분은 유리로 막았고 코로 숨쉬기 위한 작은 구멍에는 아로마 향을 담았다. 좋은 향기가 나쁜 냄새로 생기는 역병으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이들의 치료법이라곤 환자의 정맥에서 피를 뽑는 게 고작이었다. 흑사병의 공포가 짓눌렀던 무지의 시대에 벌어진 일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전파 속도만큼 빠르게 반중(反中) 감정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중국인 입국 금지를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66만 명을 넘어섰다. 일본 트위터에선 ‘#중국인은일본에오지마라’는 해시태그가 인기를 끌고 있다. 홍콩과 베트남 상점에선 ‘중국인 출입금지’ 푯말까지 나붙었다. 감염 공포가 커지다 보니 바이러스 대신 중국인을 상대로 분풀이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서양에선 반중 감정이 반아시아 인종주의로까지 변질되고 있다. 대중교통 이용 시 또는 소셜미디어에서 인종차별을 겪었다는 경험담이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에선 ‘#JeNeSuisPasUnVirus(난 바이러스가 아니다)’라는 해시태그에 차별 사례들이 올라왔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가 수학했던 이탈리아의 유명 음악학교는 최근 동양인 학생 전원의 출석을 금지시켰다. 바이러스 위험 국가나 지역을 다녀왔는지 묻지도 않고 포괄적으로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드러난다.

▷경제와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중국의 굴기’는 아시아 주변국뿐 아니라 서양의 경쟁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중국에 들어온 외국 기업을 마구잡이로 쫓아내는 모습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과정에서 우리도 경험했다. 하지만 중국에 불만이 있더라도 신종 코로나를 빌미 삼아 외국인 혐오를 드러낸 서구의 행태는 한참 잘못된 일이다.

▷프랑스의 한 지역신문은 최근 신종 코로나와 관련해 ‘황색경보(Yellow Alert)’라는 1면 제목을 올렸다. 청일전쟁 말기에 독일 황제가 내세운 모략인 황화론(黃禍論·Yellow Peril)을 떠올리게 한다. 황색 인종이 부흥하면 백인에게 해를 입힐 것이라는 주장인데, 동양인의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는 명백한 인종차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공포감을 조장하는 못된 행태에는 무지한 이들의 선동을 자양분으로 삼는 무슨 공통 법칙이라도 있나 보다.
 
김영식 논설위원 spear@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반중 감정#반아시아 인종주의#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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