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어린 상사와 잘 지내는 법[광화문에서/김현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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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산업1부 차장
김현수 산업1부 차장
“헐… 나보다 어리네!”

2020년 주요 그룹 정기 임원 인사가 날 때마다 상당수 임직원들이 탄식과 함께 내뱉은 말이다. 1984년생 상무를 낸 LG그룹을 시작으로 줄줄이 파격적인 ‘젊은 보스’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도 1981년생 전무, 1970년생 부사장, 1968년생 사업부장(사장)을 선임했다.

배우 전지현, 가수 비욘세와 같은 닭띠임을 늘 자랑스럽게 여겨온 기자는 이제 동갑내기 목록에 삼성전자 전무가 생기자 기분이 묘했다. 삼성 최연소 전무인 프라나브 미스트리 전무는 삼성리서치아메리카에서 인공인간 ‘네온’ 개발을 이끈 천재 과학자이니 초고속 승진을 할 만하다. 그런데도 ‘누군 별이 됐는데 나는 대체 뭘 하고 있나. 역시 이과를 택해야 했어’와 같은 오만 생각이 났다.

업종도 업무도 전혀 다른 기자가 묘한 기분에 잠길 정도니 같은 회사 임직원들의 충격은 얼마나 컸을까. 삼성의 한 계열사 상무는 “나이 어린 전무, 얼마 차이 안 나는 사장을 보니 당장 ‘난 어쩌나’ 조급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특히 삼성전자 최연소 사장과 부사장이 모두 무선사업부에서 나오는 바람에 해당 부서 임직원의 심적 동요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밀려날까 불안한 직원, 꿈이 커진 직원 등등. 84년생 LG 여성 상무도 오랫동안 화제가 됐다.

장유유서의 나라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젊은 보스’ 충격파는 만만치 않다. 오죽하면 영화도 있을까. 구조조정 위기 속 아들뻘 상사가 나타나는 직장인의 악몽을 다룬 ‘인 굿 컴퍼니’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플로리안 쿤체 독일 콘스탄츠대 교수 등이 2016년 조직행동 저널에 실은 논문에 따르면 어린 상사를 둔 직원들은 대개 분노와 실패감 등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61개 기업, 8000명을 조사한 결과다.

그렇다고 나이 기반 승진 체제로 돌아가자 외칠 순 없다. 중간관리자가 줄고 직원이 최고경영자(CEO)에게 직보하는, 상사가 없는 이른바 ‘보스리스(bossless) 시대’가 점쳐질 정도로 조직 체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형 임원 중심 조직에선 성과 중심의 파격 승진도 늘 수밖에 없다.

한국도 중간관리직 축소, 현장형 인재의 파격 승진이 대세다. SK그룹은 지난해 상무 전무 부사장 등 층층 임원 직급을 하나로 통합하고, 현장 직책 중심 조직으로 바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설 연휴에 브라질 사업장 출장에 나서며 한종희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 노태문 무선사업부장(사장) 등 차세대 리더들을 동반했다. 사실상 세트부문 현장 전략회의가 된 출장길에서 현장 실무 책임자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의미다.

‘젊은 보스’는 이제 ‘뉴 노멀’이 될 것이다. 분노, 실패의 감정에서 벗어나 새 시대와 잘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서장 중심으로 대충 알아서 일하기보다 직무를 명확히 구분해 주라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그다음으론 서로의 직무를 존중해 주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한다. 경영계의 교과서로 불리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 등에 나온 ‘팁’이니 조금 시시해도 따라야지 어쩌겠는가. 영화에선 이미 서로의 직무를 존중하는 이야기가 나와 있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오피스 솔메이트로 거듭난 30대 CEO와 70대 인턴을 다룬 영화 ‘인턴’ 말이다.
 
김현수 산업1부 차장 kimhs@donga.com
#프라나브 미스트리#젊은 보스#인 굿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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