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현상’과 황교안[오늘과 내일/정연욱]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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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이탈한 중도층, 한국당도 ‘NO’
黃, 자기희생 없는 현상유지는 필패

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며칠 전 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차기 대선후보 2위에 올랐다. 오차범위 안이지만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보다 조금 높았다. 윤석열은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검찰총장에 대한 정치적 여론조사는 부적절하다며 자신을 여론조사 항목에서 빼달라고 했다.

윤석열이 정치적 행보를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다수 국민들도 그 정도 예상은 하고 있을 것이다. 관심은 여론조사에 반영되고 있는 국민들의 높은 기대감에 쏠린다. 이런 ‘윤석열 현상’이 왜 생겼느냐는 것이다.

1차적 원인은 검찰권 행사를 둘러싼 청와대-여당과 윤석열 검찰의 대결 구도다. 여당 대표까지 지낸 법무부 장관은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명을 거역하느냐’는 말로 윤석열 주변을 정리하는 검찰 인사를 밀어붙였다. 대통령은 “검찰은 먼저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며 적극 엄호에 나섰다. 보수-진보 성향을 떠나 역대 정부에서 볼 수 없었던 초유의 장면들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일사불란하게 윤석열 검찰을 때릴수록 청와대-여당은 ‘강자’로, 윤석열 검찰은 ‘핍박받는 약자’로 비치는 프레임은 더 강화되고 있다. 과거 ‘386’과 대척점에 섰던 공안검찰을 떠올리며 ‘선악 구도’로 몰아가려던 여권의 구상은 집권 세력임을 망각한 낡은 패러다임이다. 윤석열 검찰이 맞을수록 윤석열 현상은 확산되는 역설이다.

지난주 갤럽 조사에서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층이 33%였다. 현 정부 출범 후 최고치다. ‘윤석열 현상’ 등으로 중도층의 여당 이탈이 늘어난 탓이다. 이 흐름은 자유한국당에 기회이지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뜬구름일 뿐이다. 중도층이 선뜻 한국당으로 가지 않는 것은 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리더십이 제자리를 못 잡고 있다는 방증이다.

황교안이 수도권 험지 출마를 선언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출마할 곳을 물으면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한다. 최근에는 서울의 용산, 양천갑 등 4곳을 놓고 가상 조사를 했다는 소식이다. 일분일초가 아쉬운 선거 국면에서 한 달 넘게 당 대표가 출마지를 놓고 저울질을 하니 해당 지역 선거를 준비하는 후보들 사이에서 “선거가 장난인 줄 아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더구나 용산과 양천갑은 지금 현역 의원이 여당 소속일 뿐 역대로 보수 우세 지역이었고 험지는 아니다. 논란이 커지자 한국당 공천관리위원회는 5일 황교안의 종로 출마 여부부터 결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역 출마를 한다면 당 대표의 선거 지휘는 포기해야 한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놓고 과연 참모들이 사전에 치밀한 검토라도 했는지 의문이 든다.

황교안의 험지 출마 카드는 당내 중진들을 압박하기 위해 다소 즉흥적으로 꺼낸 측면도 있었다. 정작 타깃으로 삼은 홍준표, 김태호는 개의치 않고 고향 출마 의사를 고수하고 있다. 당 대표의 명령이니 다 받아들여야 한다는 관료적 발상이었다면, 정치권에서 통하지 않는다.

황교안과 새로운보수당 유승민 보수재건위원장이 조만간 만나 양당 통합 논의의 담판을 짓는다고 한다. 양측은 부인하지만 기득권 청산 차원에서 두 사람의 동반 불출마 논의가 오가고 있다는 전언이다. 불출마가 과연 황교안의 희생 카드냐는 반론도 있겠지만 험지 출마 논의에 갇혀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을 방치해서도 안 될 것이다. 행여 의원직에 대한 미련이 있다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 앞으로 현역 의원 공천 물갈이가 몰고 올 당내 파열음을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당 대표직의 거취를 걸어야 한다. 이제 정치 초년병이라고 적당히 넘어갈 시기는 지났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윤석열#황교안#국회의원 총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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